[남자 쇼트트랙 레전드 공동 8위 – 이호석]
@ 커리어 하이라이트
이호석은 2005년 시즌에 시니어 무대에 데뷔하자마자 단숨에 안현수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떠올랐습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과 곧바로 이어 개최된 2006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안현수와 함께 투톱 체제를 형성하며 우리나라 선수끼리 세계 정상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는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한국 쇼트트랙의 역사에서 역대 에이스의 계보는 ‘김기훈 -> 채지훈 -> 김동성 -> 안현수’의 시대 순으로 언급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역대 에이스의 계보를 언급할 때는 종종 생략되기도 하지만, 김기훈의 시대에는 김기훈과 이준호가 대표팀 에이스로 투톱 체제를 형성했고 안현수의 시대에는 안현수와 이호석이 대표팀 에이스로 투톱 체제를 형성했습니다. 따라서 이호석은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6명의 전설에 포함되는 선수입니다.
이호석은 주니어 시절인 2003년~2005년에 걸쳐서 세계 주니어 선수권을 3년 연속으로 제패한 뒤 2005년 시니어 무대에 데뷔해서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에서 안현수에 이어 종합 세계랭킹 2위에 올랐습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이호석은 생애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개인종목인 1500m와 1000m에서는 안현수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고 단체종목인 5000m 계주(릴레이)에서는 안현수, 송석우, 서호진, 오세종과 함께 팀을 이뤄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토리노 동계올림픽 직후 개최된 2006년 세계선수권에서도 안현수와 이호석의 각축이 이어졌는데, 공교롭게도 토리노 동계올림픽 당시와 똑같은 구도가 형성되었습니다. 올림픽 때와 마찬가지로 세계선수권에서도 1500m와 1000m에서 모두 안현수가 금메달, 이호석이 은메달을 획득했고 개인종합에서도 안현수가 1위, 이호석이 2위에 올랐습니다. 이호석은 2006년 시즌에 생애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절정의 기량을 선보였지만, 공교롭게도 안현수와 같은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하는 불운으로 인해 우리나라 쇼트트랙 팬들에게는 영원한 2인자의 이미지로 각인되었습니다.
이호석은 2007년 월드컵 쇼트트랙 시리즈에서 종합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다시한번 상승세를 탔습니다. 2008년 세계선수권에서는 안현수가 부상으로 인해 불참하면서 이호석, 송경택 등이 대한민국 쇼트트랙 대표팀을 이끌고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와 종합우승을 놓고 각축을 벌였습니다. 2008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개인종목인 500m, 1000m, 1500m, 3000m의 금메달리스트가 전부 따로따로 나올 정도로 대혼전 양상이 벌어졌는데, 한국 선수들이 전반적인 주도권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에게 간발의 차이로 개인종합 우승을 내주고 이호석은 개인종합 2위에 올랐습니다.
2009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이호석은 1000m와 1500m 금메달을 획득하고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3관왕에 올랐습니다. 이호석은 드디어 ‘만년 2인자’의 꼬리표를 떼고 생애 처음으로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호석, 성시백, 이정수, 김성일, 곽윤기로 구성되었는데 당시 안현수가 빠진 대한민국 대표팀에서는 이호석이 사실상의 에이스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이호석은 쇼트트랙 인생 최대의 시련을 겪었습니다. 남자 1500m 결승에서 이정수, 성시백, 이호석이 나란히 1, 2, 3위를 달리던 도중 이호석이 성시백을 향해 추월을 시도하다가 함께 엉켜서 넘어지는 바람에 은메달과 동메달을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 J.R. 셀스키에게 내주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이호석은 우리나라 쇼트트랙 팬들의 극심한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호석은 올림픽의 나머지 종목 중 1000m에서는 이정수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고 5000m 계주(릴레이)에서는 이정수, 성시백, 곽윤기, 김성일과 함께 팀을 이뤄서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직후 개최된 2010년 세계선수권에서 이호석은 1000m와 3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고 5000m 계주(릴레이) 금메달을 포함해서 4관왕에 오르며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습니다. 이호석은 2년 연속으로 세계챔피언에 오르며 세계선수권 통산 우승 횟수에서도 김동성, 리자준 등과 함께 역대 공동 3위를 마크하게 되었습니다.
2011년 이후부터 이호석은 기량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세계 정상권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2012년에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탈락했습니다. 2013년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올림픽 출전권 확보에 실패한 가운데, 월드컵 시리즈에만 참가 자격을 얻었습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5000m 계주(릴레이) 종목에는 본래 노진규의 출전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노진규의 골육종 투병으로 인해서 이호석이 노진규의 대체 선수로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호석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개인 종목에는 출전하지 못하고 계주(릴레이) 멤버로만 참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호석은 대한민국 국적의 남자 쇼트트랙 선수 중 최초로 올림픽에 통산 3회 출전하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남자 5000m 계주(릴레이) 레이스를 펼치던 도중에 넘어지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며 또다시 팬들의 비난을 받는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호석은 2014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5000m 계주(릴레이) 멤버로 참가해서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이호석은 2014년 세계선수권 대회 참가를 마지막으로 국제 무대에서 은퇴했고, 2015년 4월에 국내 대회에 마지막으로 참가하면서 쇼트트랙 선수로서 공식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한때 안현수와 함께 세계 최강 대한민국 쇼트트랙 대표팀을 이끄는 원투펀치로 활약하며 쇼트트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선수였는데, 마지막 퇴장은 다소 쓸쓸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 세계선수권에서의 활약
이호석은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2006년 개인종합 2위, 2008년 개인종합 2위, 2009년과 2010년에는 2년 연속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통산 우승 2회, 준우승 2회를 마크하며 개인종합 3위 이내에 통산 네 차례 진입하며 시상대에 올랐습니다. 연도별로는 2008년 2관왕, 2009년 3관왕, 2010년 4관왕에 오르며 통산 9개의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개인종합 우승을 통산 2회 이상 달성한 선수는 40년 역사를 통틀어서도 겨우 9명뿐입니다. 안현수가 6회 우승, 마크 가뇽이 4회 우승으로 각각 1위와 2위를 마크하고 있으며 김동성, 리자준, 이호석을 비롯한 7명의 선수가 2회 우승으로 공동 3위를 마크하고 있습니다.
세계선수권에서 개별 종목별로 획득한 통산 금메달 개수에서는 안현수가 20개로 1위, 마크 가뇽이 14개로 2위, 찰스 해멀린이 13개로 3위, 리자준이 12개로 4위, 김동성이 11개로 5위, 이호석이 9개로 6위, 김기훈과 아폴로 안톤 오노가 8개로 공동 7위, 채지훈이 7개로 9위를 마크하고 있습니다.
이호석은 세계선수권 대회에서의 우승 횟수만으로 따진다면 과거의 전설적인 대선배였던 김기훈과 채지훈마저 능가하는 활약을 선보였습니다. 역대 대한민국 국적의 선수 중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종합 통산 2회 우승을 달성한 선수는 김동성, 안현수, 이호석 이렇게 3명뿐입니다.
@ 올림픽에서의 활약
이호석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개인종목인 1500m와 1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단체종목인 5000m 계주(릴레이)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개인종목인 1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단체종목인 5000m 계주(릴레이)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5000m 계주(릴레이) 멤버로만 출전했으나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습니다.
이호석은 동계올림픽에 통산 3회 출전해서 개인종목에서는 은메달만 3개를 획득했고, 단체종목인 계주(릴레이)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를 획득한 것을 포함해서 통산 금메달 1개, 은메달 4개를 획득했습니다. 이호석은 역대 대한민국 국적의 남자 쇼트트랙 선수 중 동계올림픽 최다 출전 기록과 통산 최다 메달 획득 기록 보유자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이 이호석의 기록을 경신하기는 했지만, 대한민국 국적의 안현수였던 시절을 기준으로 하면 여전히 이호석이 최고 기록 보유자로 남아 있습니다.)
이호석은 올림픽에서 거둔 통산 성적은 꽤 괜찮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만년 2인자’의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는데, 안현수와 동일한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하는 불운으로 인해서 개인종목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는 개인종목 세 종목 중 두 종목에서 모두 안현수의 벽에 부딪히며 은메달만 2개를 획득했습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대표팀 후배 이정수가 깜짝스타로 탄생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의 역대 에이스 계보로 거론되고 있는 김기훈(알베르빌), 채지훈(릴레함메르), 김동성(나가노), 안현수(토리노)는 모두 특정 대회를 제패한 세계 최강자로서의 업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전설 중의 전설로 각인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올림픽을 제패한 이후 세계선수권도 제패하면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또는 ‘올림픽 챔피언’, ‘세계선수권자’ 또는 ‘세계챔피언’이라는 수식어를 모두 얻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김기훈 시대의 2인자였던 이준호와 안현수 시대의 2인자였던 이호석은 세계선수권에서는 챔피언에 오른 경력이 있지만, 올림픽을 제패하지는 못하면서 2인자 또는 3인자의 이미지로 각인되었습니다. 계주(릴레이)에서의 금메달도 통산 기록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개인종목의 금메달과는 그 무게감이나 위상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단체종목인 계주(릴레이)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이준호, 송재근, 모지수, 이호석, 송석우 등도 기록상으로는 ‘금메달리스트’의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에 이호석은 통계 기록상으로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세계선수권자’라는 수식어를 모두 얻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
@ 기타 국제대회에서의 활약
이호석은 주니어 시절인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세계 주니어선수권을 3년 연속으로 제패했습니다.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후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에서는 2005년 종합 세계랭킹 2위, 2007년 종합 세계랭킹 1위, 2008년 종합 세계랭킹 2위에 올랐습니다. 동계 아시안게임에는 2007년과 2011년 두 차례 출전해서 남자 5000m 계주(릴레이)에서 2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 순위 선정 근거
이호석은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팬들에게 ‘만년 2인자’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동시에 ‘1인자 같은 2인자’의 이미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상당한 팬을 보유하고 있는 동시에 안티의 존재도 상당하고, 자국 팬들에게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된 불운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이호석이 우리나라의 팬들에게 비난을 받게 된 데에는 여러 불운이 작용했습니다. 한창 전성기였던 시절에는 파벌싸움 이슈로 인해서 안현수의 팬들과 이호석의 팬들이 대립구도를 형성했습니다. 본래 파벌싸움의 근본적인 문제를 조명하려면 한국 쇼트트랙 역사의 초창기 인물인 전명규 전 감독과 김기훈, 이준호, 송재근, 모지수 등의 인물이 그 중심에 있기는 하지만, 어느새 팬들 사이에서는 ‘안현수 vs 이호석’, ‘이정수 vs 곽윤기’의 대립구도로 변질되면서 선수 당사자 또는 팬들 사이의 감정싸움이 벌어지는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호석의 불운 타이밍에는 아폴로 안톤 오노의 존재감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실제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정밀분석을 할 때랑, 감정적으로 느끼는 이미지 사이에 커다란 괴리감이 존재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호석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맹활약하면서 오노를 철저하게 제압했지만, 2008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간발의 차이로 오노에게 종합우승을 내줬습니다.
공교롭게도 안현수가 부상으로 이탈하자마자 곧바로 오노에게 우승을 내줌으로 인해서 당시 우리나라 팬들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호석에게는 타이밍이 상당히 안 좋았던 케이스였습니다. 사실 이호석은 2006년부터 2010년 사이에 맹활약을 펼치면서 오노의 세계 정상 등극을 저지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에 안방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오노에게 우승을 내준 사건이 팬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면서 국내 팬들의 무의식 속에 이호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은연중에 스며들었습니다.
이후 이호석은 세계선수권에서는 2009년과 2010년 2년 연속으로 챔피언에 올랐고,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도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이정수에 이은 2인자 역할을 하며 개인종목과 계주(릴레이)에서 모두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1500m 결승전에서 이호석이 성시백을 추월하려다 넘어졌던 그 타이밍에 어부지리로 은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하필이면 아폴로 안톤 오노였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우리나라의 일부 팬들에게는 이호석이 오노보다 더 미움을 받는 상황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호석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지만, 하필이면 그때마다 오노가 어부지리로 이득을 취했던 상황 역시 이호석에게는 매우 불운한 상황이었습니다.
이호석의 마지막 올림픽이었던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도 불운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쇼트트랙 팬들은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안현수)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내면서 우리나라 대표팀에게 적개심을 표출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호석은 5000m 계주(릴레이) 경기 도중 넘어지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면서 또다시 국내 팬들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불운이 겹치다 보니까 이호석은 대한민국 쇼트트랙 역사에서 ‘전설’의 반열에 오를 만한 업적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국내 팬들에게 더 미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무튼 1990년대 이후의 쇼트트랙 역사를 정리할 때 대한민국 쇼트트랙 역사의 역대 에이스 계보는 ‘김기훈 -> 채지훈 -> 김동성 -> 안현수’로 이어지고 김기훈 시대의 2인자가 이준호였고 안현수 시대의 2인자가 이호석이었습니다. 세계 쇼트트랙 황제의 계보는 ‘김기훈 -> 마크 가뇽 -> 김동성 -> 안현수’로 이어지는데, 김기훈 시대의 라이벌은 이준호와 윌프레드 오레일리였고, 마크 가뇽 시대의 라이벌이 채지훈, 김동성 시대의 라이벌이 리자준이었으며, 안현수 시대의 라이벌은 1기 아폴로 안톤 오노, 2기 이호석, 3기 찰스 해멀린이었습니다.
과거 전설들 중에서 김기훈과 채지훈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모두 제패하며 전설 중의 전설의 반열에 올랐지만, 세계선수권에서 통산 2회 이상의 우승에는 실패했습니다. 이호석은 올림픽을 제패하지는 못했지만 세계선수권에서는 그 힘들다는 통산 2회 우승을 달성해 냈는데, 이는 리자준이 기록한 성적과 상당히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각 개별 종목별 메달 획득 현황을 정밀하게 분석할 경우 이호석은 올림픽 성적에서는 리자준보다 근소하게 앞서지만 세계선수권 성적에서는 리자준보다는 뒤처집니다.
2000년대 이후의 쇼트트랙 역사만을 놓고 봤을 때에는 안현수(빅토르 안)라는 절대강자가 존재하는 가운데, 아폴로 안톤 오노, 이호석, 찰스 해멀린의 순서로 바톤을 이어받으며 3명의 2인자가 존재했습니다. 아폴로 안톤 오노와 찰스 해멀린은 모두 자국인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는 데 비해서 이호석은 오히려 고국 팬들에게 더 비난을 받거나 평가절하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를 처음 기획할 당시에 역대 레전드 순위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도 아폴로 안톤 오노, 찰스 해멀린, 이호석 이렇게 3명의 순위를 놓고 고민을 했었습니다. 이들 3명 모두 ‘안현수 시대의 2인자’였으면서도 상당 기간 동안 롱런하면서 ‘1인자 같은 2인자’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선수들입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본 시리즈를 기획할 당시만 해도 찰스 해멀린이 유명세에 비해서 세계선수권의 개인종합 타이틀 획득 경험은 없었던 상태였지만, 2018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결국은 찰스 해멀린이 개인종합 세계챔피언에 등극하게 되면서 찰스 해멀린의 순위를 대폭 상향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머지 두 선수인 오노와 이호석의 순위를 놓고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일단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이자 단일시즌의 세계챔피언을 가리는 무대인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이호석이 개인종합 우승 2회를 차지했고, 각각 3관왕, 4관왕에 올랐기 때문에 오노보다는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외적인 인지도와 상징성, 홍보효과가 큰 무대인 올림픽 성적에서는 이호석이 오노에 비해 다소 열세를 보였습니다.
한편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보다는 권위가 한참 떨어지기는 하지만, 2000년대 이후의 3대 메이저 국제대회로 자리잡은 월드컵 시리즈의 성적에서도 이호석은 종합 세계랭킹 1위에 한 차례 올랐고 오노는 종합 세계랭킹 1위에 세 차례 올랐습니다. 그리고 쇼트트랙 선수로서의 커리어 전체를 놓고 봤을 때도 이호석보다는 오노가 좀 더 꾸준하게 강자로서 롱런을 했던 편입니다.
이호석은 첫 올림픽인 2006년부터 두 번째 올림픽인 2010년까지는 세계 정상권의 실력을 유지하면서 단기간에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두 번째 올림픽인 2010년에서 세 번째 올림픽인 2014년까지의 텀을 이루는 기간 동안에는 기량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세계 정상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기록상으로는 ‘올림픽 통산 3회 출전’이라는 기록이 성립하기는 하지만 리자준, 아폴로 안톤 오노, 찰스 해멀린이 거의 10년 안팎의 기간 동안 세계 정상권을 꾸준히 지킨 데 비해서 이호석이 세계 정상권을 유지했던 기간은 약 5년 안팎이었습니다.
일단 본 시리즈의 역대 레전드 순위에서는 이호석과 아폴로 안톤 오노를 공동 8위로 설정하기는 했지만, 팬들에게 각인된 이미지에서 이호석은 오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대접을 잘 못 받고 있는 측면이 좀 있습니다. 오노의 경우에는 대외적 인지도와 홍보효과가 큰 올림픽 무대에서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제대로 누렸고 자국인 미국에서는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이호석은 오히려 국내 팬들에게 미움을 받고 비난여론의 중심에 서다 보니까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전설로서의 예우를 다소 소홀하게 받고 있는 측면이 좀 있습니다.
비록 이호석이 국내 팬들에게 ‘만년 2인자’ 또는 ‘안현수의 대척점에 있는 선수’로서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호석은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세계챔피언을 두 차례나 차지하는 위업을 달성한 선수였습니다.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의 역사에서 에이스 계보를 설명할 때 일반적으로는 ‘김기훈 -> 채지훈 -> 김동성 -> 안현수’ 이렇게 네 명으로 압축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전설의 범위를 좀 더 확대할 경우에는 ‘김기훈, 이준호, 채지훈, 김동성, 안현수, 이호석’ 이렇게 6명이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 역사에서 대표적인 전설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호석은 세대교체 주기가 짧은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 선수들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5년 이상 꾸준히 세계 정상권의 기량을 유지하면서 동계올림픽에도 통산 세 차례나 출전하며 롱런했습니다. 이 자체만으로도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 역사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이정표를 남겼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야후 위키피디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과거 신문, 방송 뉴스기사 참고}
(네이버 블로그 링크)
blog.naver.com/johncena07/221993496385
남자 쇼트트랙 레전드 공동 8위 – 이호석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 레전드 공동 8위 – 이호석] @ 커리어 하이라이트 이호석은 2005년 시즌에 시니어 무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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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Gt4wfiZwN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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