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쇼트트랙 레전드 공동 10위 – 윌프레드 오레일리]
@ 커리어 하이라이트
영국의 윌프레드 오레일리는 한때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에이스 김기훈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의 실패 이후로 김기훈과는 운명이 180도 엇갈리게 되었습니다.
윌프레드 오레일리가 쇼트트랙 선수로 언제 데뷔해서 어떠한 대회에 참가했는지 초창기의 기록은 인터넷 검색으로는 거의 찾기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옛날 선수들에 대한 역사 자료가 워낙에 빈약하다 보니까 그저 과거의 신문이나 TV 중계방송에서 언급된 내용을 희미한 기억력에 의존해야 하거나 또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검색을 통해서 그나마 부족한 기억력을 간신히 보충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네이버 뉴스캐스트’의 ‘스포츠인 김기훈’ 코너에서 나온 김기훈의 인터뷰 내용 중에는 김기훈이 쇼트트랙에 입문할 당시 가와이 도시노부, 이시하라 다쓰요시, 윌프레드 오레일리의 경기 비디오를 보면서 연습했다는 증언이 나옵니다. 이 인터뷰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윌프레드 오레일리는 김기훈, 이준호보다는 쇼트트랙에 먼저 데뷔한 베테랑 선수였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는 쇼트트랙이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영국의 윌프레드 오레일리는 500m와 1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2관왕에 올랐고 한국의 김기훈이 1500m, 이준호가 3000m에서 각각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오레일리는 김기훈, 이준호와 함께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반열에 올랐고, ‘최초의 올림픽 2관왕’에도 등극했습니다.
언론매체 등에서 역대 올림픽 기록을 다룰 때 시범종목 시절의 기록은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보니 윌프레드 오레일리가 누군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과거 선수에 대해서 찾아보려 해도 자료를 찾기가 매우 힘이 드는데, 특히 윌프레드 오레일리에 대한 프로필이 제대로 나온 것은 거의 없습니다. 올림픽에서는 ‘시범종목’ 시절의 기록이 비공식 기록이라 하더라도 쇼트트랙의 역사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역사 자료가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고, 과거 전설에 대해서 제대로 된 대접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오레일리는 1990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이준호에 이어서 개인종합 2위에 올랐고 1991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오레일리에 이어서 김기훈과 이준호가 각각 개인종합 2위와 3위를 차지했는데, 이들 3명의 선수는 쇼트트랙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앞둔 시점에서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의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는 쇼트트랙이 사상 최초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고, 남자부의 개인종목에서는 1000m 한 종목에만 금메달이 걸려 있었습니다.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등극하기 위해서 당대의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총출동했는데, 그중에서도 영국의 오레일리는 4년 전 시범종목 시절의 2관왕이자 직전 시즌 세계챔피언이었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TV 중계방송에서도 해설자들은 오레일리를 ‘김기훈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오레일리는 레이스 초반에는 순항하면서 준결승까지 안정적으로 진출했습니다. 대회 초반에 캐나다의 프레드릭 블랙번과도 한 조가 됐었는데, 그때도 오레일리가 조1위, 블랙번이 조2위로 통과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캐나다의 블랙번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예 선수였는데, 나중에 은메달리스트로 등극하게 됩니다. 오레일리는 준결승에서 대한민국의 이준호, 뉴질랜드의 맥밀런과 한 조가 되었는데, 맥밀런과 충돌하면서 넘어지는 불운으로 인해 탈락했습니다.
결승전에는 대한민국의 김기훈과 이준호, 캐나다의 프레드릭 블랙번, 뉴질랜드의 맥밀런이 진출했습니다. 오레일리는 B파이널, 즉 5~8위전에 진출해서 선두로 골인하며 5위를 차지했습니다. 결승전인 A파이널에서는 김기훈이 금메달, 블랙번이 은메달, 이준호가 동메달을 획득했고 맥밀런이 4위를 차지했습니다.
한때 라이벌이었던 김기훈과 오레일리는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이후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김기훈은 라이벌 오레일리의 탈락 덕분에 결승전에서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고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김기훈은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금메달 획득 이후 1992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전관왕 신화를 달성했고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도 남자 1000m 부문 2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오레일리도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까지 출전하며 선수생활을 지속했지만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습니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최강자로 꼽히고 있었지만 알베르빌에서의 실패 이후로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한때 라이벌로 거론되었던 김기훈에게는 더 이상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윌프레드 오레일리는 쇼트트랙이 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준결승에서 넘어지는 불운으로 인해서 메달을 획득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공식 기록상으로는 올림픽 노메달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쇼트트랙이 올림픽 시범종목이던 시절 오레일리는 ‘최초의 올림픽 2관왕’에 등극했습니다. 비공식 기록이라 하더라도 쇼트트랙의 역사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위업임에 틀림없습니다. 쇼트트랙이라는 종목의 해당 협회라든지 또는 언론매체 등에서 과거 역사 자료를 소홀히 대하고 전설에 대한 제대로 된 대우를 하지 않는 풍토가 형성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에서 윌프레드 오레일리에 대한 자료를 거의 찾아보기가 힘든 실정입니다. 그나마 올드팬들 중에서는 ‘김기훈의 라이벌’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조차도 옛날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심지어는 김기훈, 이준호, 채지훈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꽤 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외국인인 오레일리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심지어는 영어가 공식 언어인 ‘위키피디아’에서조차도 윌프레드 오레일리에 대한 자료가 빈약하다 보니까 유럽인들 중에서도 오레일리가 누군지를 제대로 알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결국 오레일리는 쇼트트랙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업적을 남긴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역사 자료, 기록물이 빈약하다 보니까 ‘잊혀진 전설’이 되었습니다.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 관한 기사들 중에서 오랜만에 ‘윌프레드 오레일리’의 이름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미디어다음에 나왔던 해당 기사에서는 ‘윌리 오라일리’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었고 영국 빙상의 전설이라고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윌프레드 오레일리는 영국 빙상계의 전설로 대우를 받고 있으며 현재는 영국 BBC 방송의 쇼트트랙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라고 합니다. 해당 기사에서는 ‘영국 빙상의 전설이 임효준의 금메달을 예측했다’라는 내용으로 소개가 되었습니다. ]
{출처: 야후 위키피디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과거 신문, 방송 뉴스기사 참고}
(네이버 블로그 링크)
blog.naver.com/johncena07/221993497665
남자 쇼트트랙 레전드 공동 10위 – 윌프레드 오레일리 (영국)
[남자 쇼트트랙 레전드 공동 10위 – 윌프레드 오레일리] @ 커리어 하이라이트 영국의 윌프레드 오레일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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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lo2sw7QiP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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