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쇼트트랙

남자 쇼트트랙 레전드 공동 10위 – 이준호 (대한민국)

JOHN CENA 2019. 11. 27. 03:16

[남자 쇼트트랙 레전드 공동 10이준호]

 

@ 커리어 하이라이트

   이준호는 김기훈과 함께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의 1세대 쌍두마차로서 선구자 역할을 했습니다. 이준호는 한국 쇼트트랙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자 최초의 세계선수권자라는 이정표도 세웠습니다.

 

   김기훈과 이준호는 모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쇼트트랙으로 전향했습니다. 1985년에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을 선발할 당시 김기훈, 이준호, 모지수가 최초의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습니다. 쇼트트랙에는 같은 시기에 입문했지만 이준호가 스피드스케이팅을 먼저 시작하며 운동선수로 선배였기 때문에 과거 인터뷰 기사 등에서도 김기훈이 이준호에게 선배라는 호칭을 사용했었습니다.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는 쇼트트랙이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었는데, 영국의 윌프레드 오레일리가 500m1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김기훈이 1500m, 이준호가 3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시범종목 시절이라 비공식 기록이기는 하지만 이준호는 김기훈, 오레일리와 함께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등극하며 쇼트트랙 역사에 한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이후 김기훈과 이준호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메달 획득 경쟁을 벌이며 한국 쇼트트랙을 아시아 정상과 세계 정상권으로 끌어올리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김기훈이 3관왕을 차지할 당시 이준호는 2관왕을 차지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의 동계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아시아컵 쇼트트랙 등의 대회에서도 이준호는 김기훈과 함께 맹활약하며 한국 쇼트트랙을 아시아 최강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이준호는 1990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쇼트트랙 역사상 최초의 세계챔피언으로 등극했습니다. 이준호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김기훈은 부상과 재활을 거쳐서 1991년 시즌에 다시 복귀했습니다. 김기훈이 1991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4관왕에 오르고 1991년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종합 2위를 차지하면서 이준호는 다시 국내에서 김기훈에 이은 2인자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이준호는 오레일리와 김기훈에 이어서 개인종합 3위에 올랐습니다.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는 쇼트트랙이 사상 최초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남자부의 개인종목은 1000m 한 종목뿐이었는데, 당시 영국의 윌프레드 오레일리가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고 대한민국의 김기훈과 이준호가 2순위, 3순위 후보로 꼽히고 있었습니다. 국내 언론에서는 이미 올림픽이 개최되기 이전부터 김기훈의 금메달 획득을 예상하고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었기 때문에 이준호는 이때부터 이미 2인자의 이미지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남자 1000m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이자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였던 김기훈은 결승까지 순항한 반면, 김기훈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영국의 오레일리는 준결승에서 넘어지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며 탈락했습니다.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오레일리의 탈락은 이변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결승전에는 대한민국의 김기훈과 이준호, 캐나다의 프레드릭 블랙번, 뉴질랜드의 맥밀런이 진출했습니다. 결승전에서는 김기훈이 금메달, 블랙번이 은메달, 이준호가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이준호는 쇼트트랙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공식 기록상으로는 최초의 동메달리스트로 기록되었습니다. 단체 종목인 5000m 계주(릴레이)에서는 김기훈, 이준호, 송재근, 모지수가 팀을 이뤄서 결승전에서 캐나다를 상대로 극적인 막판뒤집기 대역전극으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당시에도 마지막 순간에 스케이트날 내밀기대역전극을 선보인 에이스 김기훈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기는 했지만, 이준호는 개인종목 동메달 획득에 이어서 단체종목에서는 최초의 금메달리스트 반열에 함께 올랐습니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이후 개최된 1992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이준호는 김기훈과 모지수에 이어 개인종합 3위에 올랐습니다. 1993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이준호는 모처럼 대표팀의 에이스 역할을 수행하며 4관왕에 올랐습니다. 이후 이준호는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도 출전했지만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습니다.

 

   1995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이준호는 마지막 불꽃을 태웠습니다. 대회 초반 출발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대회가 진행되면서 점차 순위가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회 최종일 3000m 경기에서 이준호는 초반 선두그룹을 이끌다가 마지막 순간에 하위권으로 처졌고 대표팀 후배인 채지훈과 송재근이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사실상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후배들을 위해서 희생한 것이었습니다. 개인종합 순위에서도 채지훈이 1, 마크 가뇽이 2, 송재근과 블랙번이 공동 3위에 올랐고 이준호의 순위는 많이 밀려났습니다. 이준호는 국제무대에서 은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희생정신을 발휘하며 대한민국 쇼트트랙 대표팀의 숨은 공로자가 되었습니다.

 

   이준호는 대표팀 동료이자 라이벌인 김기훈의 존재로 인해서 2인자의 설움을 겪어야 했고 때로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강요당하기도 했는데, 이는 나중에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고질적인 병폐인 파벌싸움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역사에 있어서 전설 내지는 거의 위인전에 오를 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인 전명규, 김기훈, 이준호가 훗날 파벌싸움의 주역으로 지탄을 받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그래도 이준호는 선수 시절의 업적으로만 따진다면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대표이자 최초의 세계선수권자로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또한 올림픽에 쇼트트랙이 도입되던 당시에도 시범종목 시절에는 김기훈, 오레일리와 함께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반열에 올랐고 정식종목 채택 이후에는 최초의 동메달리스트에 등극하며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출처: 야후 위키피디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과거 신문, 방송 뉴스기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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