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가요 레전드

한국 대중가요 역사 – 레전드

JOHN CENA 2020. 10. 6. 05:58

[[ 한국 대중가요 역사 레전드 ]]

 

  한국 대중가요 레전드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연재하기에 앞서서 전체적인 뼈대가 될 만한 시대별 대표 가수들을 소개한 후 이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기획하게 된 계기라든지 앞으로의 방향을 간략하게 제시하려고 합니다.

 

  우선 한국 대중가요가 처음 태동하던 시기인 1920년대~1930년대의 흐름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를 규정할 때는 다소의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1926년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발표된 시점부터를 한국 대중가요 역사의 시발점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이어서 1932년에는 이애리수의 <황성옛터>가 발표되었습니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역사의 맨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인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대중가요 역사에서는 그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윤심덕(사의 찬미)과 이애리수(황성옛터)가 초창기의 대표적인 전설, 즉 레전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1930년대에는 채규엽, 고복수, 왕수복, 선우일선, 이난영, 장세정 등의 가수들이 본격적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본래 1930년대 당대의 인기로만 친다면 남자 가수 중에서는 채규엽, 여자 가수 중에서는 왕수복이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스타였습니다. 1935년에는 <삼천리>라는 잡지에서 역사상 최초로 대중가수들의 인기 순위를 정하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당시 남자 가수 부문에서는 채규엽이 1위에 올랐고 여자 가수 부문에서는 왕수복이 1위에 올랐으며 남녀를 통틀어서 전체 득표수에서는 왕수복이 최다 득표 1위를 차지했고 채규엽이 최다 득표 2위에 오른 바 있습니다.

 

  한편 이난영은 1934년에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곡 <목포의 눈물>을 발표했습니다. 당대의 여가수 중에서는 왕수복과 선우일선이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고 이난영과 장세정이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본래 1930년대 당대의 인기 순위만을 따진다면 이난영이 당대의 인기 순위 1위는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남자 가수 중에서는 채규엽, 여자 가수 중에서는 왕수복이 최고의 인기 스타였습니다. 그러나 채규엽과 왕수복은 모두 광복 이후 월북을 하면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 이후의 대한민국에서는 그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후대의 사람들, 즉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는 채규엽과 왕수복의 이름은 거의 잊혀진 존재가 되었고, 윤심덕(사의 찬미)과 이애리수(황성옛터)의 뒤를 잇는 전설의 계보에는 이난영(목포의 눈물)의 이름이 기록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1930년대 당시에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광복 이후에도 끊임없이 그 생명력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목포의 눈물>은 호남인들의 정서를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고 전설의 프로야구 팀 <해태 타이거즈>를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으며 한국 현대사의 거목이자 인동초라는 별명을 얻은 김대중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1936년에는 가요 황제 남인수가 데뷔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남인수가 1938년에 발표한 <애수의 소야곡>은 당대 최고의 히트곡이자 가요 황제 남인수를 상징하는 대표곡으로 자리잡았습니다. 1938년에 데뷔한 백년설은 남인수의 최대 라이벌로 떠오르며 광복 이전 한국 대중가요계의 양대산맥 체제를 형성했습니다. 1930년대 후반 ~ 1940년대에 걸쳐서는 남인수, 백년설, 고복수, 김정구 등의 가수들이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로 전성기를 누렸고 특히 남인수와 백년설이 1940년대 가요계의 양대산맥으로 군림했습니다.

 

  광복 이후인 1947년에는 새로운 슈퍼스타 현인의 등장과 함께 <신라의 달밤>이라는 불멸의 히트곡이 탄생했습니다. 1950년대에 들어서는 현인이 새로운 시대의 대표주자로 떠올랐고 기존의 가요 황제였던 남인수도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1940년대에는 남인수와 백년설이 양대산맥 체제를 형성했고 1950년대에는 남인수와 현인이 양대산맥 체제를 형성했습니다. 광복 이전의 대표적인 히트곡은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이었으며 광복 이후의 대표적인 히트곡은 현인의 <신라의 달밤>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다시한번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면, 한국 대중가요의 태동기였던 1920년대 ~ 1930년대에 걸쳐서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대표적인 전설의 계보는 윤심덕(사의 찬미), 이애리수(황성옛터), 이난영(목포의 눈물)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1940년대에는 남인수와 백년설이 양대산맥 체제를 형성했고 1950년대에는 남인수와 현인이 양대산맥 체제를 형성했습니다.

 

  남인수, 백년설, 현인은 대한민국의 원로가수들 중 최고의 전설로 꼽히고 있으며 라이벌 관계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춰서 이야기할 때는 남인수와 백년설의 라이벌 관계가 좀 더 자주 거론되는 경향이 있고, 광복 이전과 광복 이후 가요계 역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야기할 때는 남인수와 현인의 이름이 좀 더 자주 거론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남인수는 1940년대 ~ 1950년대에 걸친 약 20년간 가요 황제로 군림하면서 조용필이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조용필이 차지하는 위상을 세종대왕에 비유한다면 남인수가 차지하는 위상은 광개토태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양대 방송국인 MBCKBS가 본격적으로 개국하면서 TV 화면을 통해 전국민들에게 존재감을 알리는 전설의 국민가수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1964년에는 그 유명한 이미자의 대표곡 <동백아가씨>가 발표되었고 이미자는 1960년대를 대표하는 전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한편 패티김은 한국 대중가수 중 해외 진출의 선구자로 활약하면서 이미자와 함께 1960년대 가요계를 대표하는 양대 전설로 떠올랐습니다.

 

  1970년대에는 그 유명한 남진, 나훈아의 라이벌 시대가 열렸습니다. 불세출의 슈퍼스타 두 사람이 동시대에 데뷔해서 동시대에 전성기를 누렸고 이후에도 수십년에 걸쳐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1970년대 당대의 경쟁 구도에서는 남진이 MBC의 가수왕과 KBS의 가요대상을 독차지하며 나훈아와의 경쟁에서 승자로 등극했습니다. 하지만 전성기가 지난 1980년대 이후에도 이들의 경쟁은 끝없이 이어졌고 가수로서의 전체 커리어를 통틀어서 오늘날에는 나훈아가 조용필 이전 시대의 최고의 전설로서 자리매김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최고의 슈퍼스타인 가왕 조용필의 전성시대가 열렸습니다. 조용필은 1976년에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조용필 등장 이전의 전설적인 히트곡에는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현인의 <신라의 달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있었는데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과거의 전설적인 히트곡들을 능가하는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습니다.

 

  조용필은 몇 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후 1979년에 다시 데뷔하였고 1980년에 발표한 1집 앨범에 <돌아와요 부산항에>,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등을 수록했습니다. 1980년 당시에는 <창밖의 여자>가 신드롬을 일으켰으며 이후 시간이 좀 더 지나서 오늘날까지도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는 <단발머리>였습니다. 조용필은 수없이 많은 히트곡들을 배출하며 198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는 1인 독주 시대를 열었습니다. 조용필의 대표곡들 중 당대에 가장 널리 알려졌던 히트곡들로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고추잠자리>, <못 찾겠다 꾀꼬리>, <비련>, <친구여> 등의 노래가 대표적으로 꼽히고 있으며 이후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 와서는 <여행을 떠나요>가 국민들에게 가장 폭넓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Bounce>라는 새로운 히트곡도 탄생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부터 대중가요의 주도권이 본격적으로 10대 청소년 또는 20대 청년 등의 젊은 세대에게 넘어오기 시작했고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이러한 세대간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가요계의 불멸의 전설이자 국민가수인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 조용필 5인방의 영향력은 흔들리지 않았고,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부모님 세대 또는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대표적인 전설의 가수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가요계의 주도권을 10대 청소년이 주도하는 현상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 3인방이 당대의 가요계를 대표하는 3인방으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신세대> 또는 <X세대>로 상징되는 청소년 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신승훈과 김건모는 좀 더 폭넓은 연령대의 폭넓은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3인방 중에서도 신승훈과 서태지가 양대산맥으로 꼽히고 있는데, 가수로서의 전체 경력이라든지 TV 가요 프로그램에서의 1위 횟수, 통산 음반판매량과 같은 통계 수치 부문에서는 신승훈이 굳건하게 1위 자리를 지켜왔지만 당대의 청소년들의 유행을 선도한다든지 또는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논쟁이 이슈화되며 언론매체에서 다뤄지는 등의 사회, 문화 현상 등의 측면에서는 서태지가 이슈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서태지는 오늘날과 같은 아이돌 전성시대의 초석을 다진 대표적인 원조 아이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가요계에는 본격적인 아이돌 전성시대가 열렸고 아시아에서는 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 한때 1세대 아이돌 시대에서 2세대 아이돌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겪으며 한때 음반 시장 자체가 붕괴되는 등 한국 대중음악 자체가 침체기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이후부터 2세대 아이돌 시대가 정착되고 2010년대에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K-POP(케이팝)의 전성시대가 막을 올렸습니다.

 

  2012년에는 유튜브라는 매체를 통해서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전세계적으로 <강남스타일> 신드롬이 일어났고 싸이는 전세계적인 유튜브 스타이자 월드스타로 등극했습니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은 흔히 1996년의 <마카레나> 신드롬에 곧잘 비견되곤 합니다. 월드스타 싸이는 사실상의 K-POP의 끝판왕과도 같은 위상을 얻었습니다.

 

  2018년에는 방탄소년단이 한국 대중가수 역사상 최초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2018년과 2019년에는 <빌보드 200> 차트에서 1위에 올랐고 2020년에는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도 1위에 올랐습니다. 방탄소년단은 해외에서 ‘21세기 비틀즈라는 수식어를 얻었고 방탄소년단의 돌풍은 비틀즈의 브리티시 인베이젼에 비견되며 코리안 인베이젼이라는 찬사를 얻기도 했습니다. 202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방탄소년단의 전성시대는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되돌아본 한국 대중가요 역사를 요약해서 가장 대표적인 전설의 계보를 나열한다면 윤심덕, 이애리수, 이난영, 남인수, 백년설, 현인,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 조용필,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 싸이, 방탄소년단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연재할 한국 대중가요 레전드 시리즈에서 1위부터 50위까지의 전설들을 차례로 소개할 예정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전설들의 순위를 매기는 것과는 별개로 2020년대에 접어든 오늘날의 분위기를 살펴본다면 어르신들의 세계관에서는 나훈아와 조용필이 가장 대표적인 전설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고 오늘날의 청소년들의 세계관에서는 싸이와 방탄소년단이 가장 대표적인 슈퍼스타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과거 20세기의 대중가요 역사에서는 트로트를 기반으로 한 국민가수들이 가요계의 대표적인 전설로 군림해 왔고 오늘날 21세기의 가요계는 아이돌 그룹들을 주축으로 한 K-POP 전성시대가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상식으로 통하는 이야기죠.

 

  그런데 인터넷에서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검색하다 보면 뭔가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 걸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주로 활동하는 일부 얼치기 매니아들과 얼치기 평론가들이 온라인 공간의 몇몇 커뮤니티들을 선점하면서 여론을 독점하고 왜곡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들 얼치기 매니아들과 얼치기 평론가들에게는 소위 말하는 뮤지션병이라는 악성 바이러스가 단단히 퍼져 있습니다. 대중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아왔던 과거의 트로트 국민가수와 현재의 아이돌 가수들의 존재를 무시하면서 오직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싱어송라이터만을 절대적인 가치인 것마냥 신봉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오만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나 전문가들이 선정했다는 ‘100대 명반 순위같은 설문조사 리스트들이 이러한 역사왜곡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이 리스트에서는 조용필, 이미자, 나훈아, 남진, 패티김, 송창식 등의 과거 전설들의 존재도 심각하게 평가절하 당하거나 무시당하고 있고 오늘날의 월드스타인 싸이,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케이팝 대표주자들의 존재도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음반이 얼마나 훌륭한지의 여부와 가수의 유명세가 반드시 일치할 수만은 없겠죠. 하지만 음악성의 우열을 판가름하고 순위를 매기겠다는 발상 자체가 참으로 오만하기 짝이 없을뿐더러,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소위 얼치기 매니아들 중에서는 소위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들에 의해서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이 선정했다는 100대 명반 순위가 마치 한국 대중가요 역사의 전설의 순위라도 되는 것처럼 왜곡된 인식이 확산되고 역사왜곡의 결정적인 도구로 악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1980년대의 뮤지션들 중 조용필의 음악과 들국화의 음악, 산울림의 음악 중 누구의 음악이 더 훌륭하고 우월한지를 판가름하고 점수를 매기고 순위를 매기겠다는 발상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하지만 당대의 가요계에서 가장 국민들에게 사랑받으며 스타덤에 오른 슈퍼스타가 가왕 조용필이라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통하는 상식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청소년기, 또는 청년기를 보냈던 윗세대 선배님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대의 청소년들에게는 조용필, 이용, 전영록의 빅3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그 시대를 풍미했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용필을 필두로 해서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고 스타덤에 오르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달성한 슈퍼스타들의 역사를 우선적으로 기록한 뒤, 대중적인 성공의 여부와는 별개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음악적인 의의 같은 건 그냥 별도의 영역에서 따로 기록하고 존중을 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1990년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서태지의 음악과 신해철의 음악, 김광석의 음악 중에서 누구의 음악이 더 훌륭하고 우월한지 점수를 매기고 순위를 매기겠다는 발상이 가당키나 합니까? 하지만 그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이라면 당대의 가요계에서 신승훈, 김건모, 서태지의 빅3가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그 시대상을 누구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와 2020년대에 접어든 오늘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월드스타 싸이와 방탄소년단 같은 슈퍼스타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것이고 이는 온전히 기록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대중적인 유명세와는 별개의 영역에서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적인 의미 같은 부분들은 따로 기록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런 부분들도 기록을 제대로 남겨놓지 않을 경우 시간이 한참 흐르면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는 일부의 얼치기 매니아들과 얼치기 평론가들이 몇 줄짜리 끄적여놓는 뻘글들로 인해서 역사적인 사실이 뒤틀리고 왜곡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그런 현상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터넷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소위 뮤지션병 환자들에 의해서 과거의 트로트 가수들은 음악인 취급도 못 받고 전설적인 국민가수들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사례를 흔하게 목격할 수 있으며 오늘날 K-POP 한류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아이돌 가수들은 아이돌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의 대상이 되는 현상을 흔하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터넷 여론을 왜곡시키고 오염시키는 얼치기 매니아들과 얼치기 평론가들의 역사왜곡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기록을 남기고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기획하고 있는 <한국 대중가요 레전드 시리즈>도 그러한 의미에서 기획된 것입니다. 과거 20세기의 한국 대중가요 역사를 풍미했던 전설의 트로트 국민가수들과 오늘날 21세기의 K-POP 한류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월드스타들에 대한 제대로 된 기록을 인터넷에 남길 필요성을 느껴서 이렇게 그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우선은 제 힘이 닿는 범위 내에서 대표적인 50명의 전설들에 대한 기록을 한명한명 소개하는 기회를 가진 뒤, 나중에는 옛날 아이돌과 요즘 아이돌의 역사에 대해서도 한번 조명해보는 기회를 가져보고 싶습니다.

 

  아마 이 콘텐츠를 보시는 분들 중에서는 연배가 좀 되시는 어르신분들도 있을 수 있고 연령대가 좀 어린 청소년이나 청년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명한명이 또 나름의 기록물을 열심히 남기고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혼자만의 작업으로 그러한 기록물들을 온전히 남기고 보존한다는 것이 조금은 벅차고 힘에 부친다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 콘텐츠를 출발점으로 삼아서 좀 더 많은 대중들이 대중들의 기억과 추억 속에서 구전되어온 가요계의 역사를 인터넷 공간에 기록물로 남겨서 보존하는 데 힘쓸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인터넷 공간에서 활개치는 얼치기 매니아들과 얼치기 평론가들의 역사왜곡에 대항할 수 있습니다.

 

  연배가 좀 되시는 어르신분들은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 조용필과 같은 과거의 전설들에 대한 기록물들을 열심히 남겨주시고 연령대가 좀 어린 청소년분들이나 청년분들은 싸이나 방탄소년단 같은 월드스타들에 대한 기록물들을 열심히 남겨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습니다.

 

 

{출처 : 위키백과, 나무위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그 외 신문 기사, 텔레비전 방송, 인터넷 뉴스 기사 참고}

 

 

 

(네이버 블로그 링크)

blog.naver.com/johncena07/222107897442

 

한국 대중가요 역사 – 레전드

[[ 한국 대중가요 역사 – 레전드 ]] 한국 대중가요 레전드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연재하기에 앞서서 전체적...

blog.naver.com

(유튜브 링크)

www.youtube.com/watch?v=MleEoaPkzLg&t=7s

 

www.youtube.com/watch?v=5tDs4EiXj6w&t=2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