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가요 레전드

한국 대중가요 레전드 4위 – 이미자

JOHN CENA 2021. 1. 27. 16:01

[[ 한국 대중가요 레전드 4이미자 ]]

 

   한국 대중가요 레전드 시리즈, 그 네 번째 시간. 한국 대중가요 레전드 4, 이미자. 한국 대중가요 역사의 불멸의 국민가수이자 전통가요를 대표하는 인물, ‘엘레지의 여왕이미자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이미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전설의 가수이고, 너무나도 유명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 시대 사람이 아닌 입장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 당시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자료를 찾아서 복원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위키백과나 나무위키에 올라와 있는 자료들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상당히 조악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인터넷 상의 부실한 자료를 보충하기 위해서 참고가 될 만한 자료를 여러 곳에서 찾아봐야 했습니다. 우선은 임진모 씨, 강헌 씨, 최규성 씨, 박성서 씨가 이미자에 대해서 작성한 칼럼이 있는지부터 검색을 해봤습니다. <임진모의 대중음악 아틀라스>, <강헌의 가인열전>, <최규성의 LP 이야기>에서 이미자에 대해 언급한 글이 있어서 약간의 참고가 되기는 했지만 가수 이미자의 경력 전체를 돌아보기 위한 정보를 얻기에는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전통가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평론가인 박성서 씨가 2015년에 뉴스메이커에 기고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이미자의 삶과 음악을 말하다>라는 제목의 칼럼 시리즈를 발견했는데, 위키백과나 나무위키보다도 훨씬 더 상세하게 이미자의 경력에 대한 설명과 해설이 담겨 있었습니다. 전통가요의 전설인 이미자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매우 귀중한 자료였습니다.

 

   네이버에는 음악평론가 최규성 씨가 옛날 음반을 전문적으로 수집해온 매니아의 도움을 받아서 옛날 음반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공간이 있습니다. <한국대중가요연구소>가 자료를 정리해서 네이버에 <가요앨범사>라는 항목에 지식백과처럼 자료를 저장하고 옛날 LP 음반들을 리뷰하는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서 이미자의 데뷔 과정에 대한 정보도 일부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과거 신문 기사를 검색해서 예전에 어떠한 일들이 있었고, 어떠한 뉴스가 보도되었는지도 살펴봤습니다. 유튜브에서는 종편 채널의 <아궁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미자와 패티김에 대해 다룬 방영분의 영상 자료와 KBS <아침마당>에 이미자가 출연해서 인터뷰했던 내용이 담긴 영상 자료를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자가 공중파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한 방영분도 다운받아서 시청했습니다. 2014년에 SBS의 예능 프로그램인 <힐링캠프>에 이미자가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이미자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 젊은 세대에게는 가장 안성맞춤인 자료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메인 MC는 이경규였고, 보조 MC는 김제동과 성유리였으며, 이미자가 게스트로 출연해서 자신의 가수 인생 전반을 직접 증언했던 소중한 역사 자료였습니다.

 

   KBS<불후의 명곡>에 이미자는 2014년과 2017, 2019년에 걸쳐서 총 세 차례 출연했습니다. 특히 2014년과 2017년 방영분에서는 전설 이미자의 옆자리에 음악 평론가 임진모 씨가 함께 착석해서 이미자의 노래들과 그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친절한 해설을 곁들여 주었습니다. 이미자의 음악 인생에 대한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였습니다.

 

   이러한 자료들을 토대로 해서 이미자의 가수 인생 전반을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이미자는 1959년에 데뷔곡인 <열아홉 순정>을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공식적으로 데뷔했습니다. 가수 이미자의 공식적인 데뷔 년도가 1959년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이전 시점에 방송에 출연해서 노래를 불렀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미자는 1957년에 KBS 라디오 방송의 <노래의 꽃다발>이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1등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미자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처음에는 교복을 입고 갔다가 학생은 안 된다며 참가를 거부당했고, 그래서 나중에 평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찾아가서 1등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이때 이미자를 눈여겨본 작곡가 나화랑 선생이 이미자를 스카웃했는데, 당시 나화랑 작곡가는 HLKZ라는 민영 방송사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미자는 1958년에 HLKZ 방송국의 <예능 로타리>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나애심의 <밤의 탱고>를 부르고 가요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후 이미자는 김성근 작곡의 <도라지 블루스>, <아리랑 상사병> 등을 비롯해서 노래 네 곡을 녹음했고, 나중에 <유니버샬 레코드>라는 음반사를 통해서 발표되었습니다. 이미자는 화신백화점 캬바레 전속가수가 되어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1959년에 이미자는 나화랑 작곡가가 소속되어 있는 <킹스타레코드>의 전속 가수가 되면서 데뷔곡인 <열아홉 순정>을 발표하고 공식적으로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이미자는 나화랑 작곡가에게 곡을 받아서 <워싱톤 부루스>, <집시의 여정> 등을 발표했습니다.

 

   1963년에 이미자는 <아세아레코드>의 전속 가수가 되면서 <이토록 못 잊어서>, <그리운 마음>,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백년한>, <두형이를 돌려줘요>라는 노래를 발표했습니다. <이토록 못 잊어서>는 영화 <미녀와 도적>의 주제가였고 <잘 있거라 나는 간다>는 영화 <행복한 고독>의 주제가였으며 <백년한>이라는 노래도 영화의 주제가였습니다. <두형이를 돌려줘요>1962년 당시 실종됐던 두형이라는 어린이를 찾기 위해 기획된 음반이었습니다.

 

이미자는 <신세기레코드>에서 <햇빛 없는 그림자>, <낙엽 지는 비탈길> 등을 발표했는데, <햇빛 없는 그림자>는 영화 <식모>의 주제가였습니다. 1964년에 이미자는 <미도파레코드>의 전속 가수가 되었는데, <미도파레코드><지구레코드>의 전신이었습니다. <미도파레코드>에서 이름이 바뀐 <지구레코드>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국내 최대의 음반 기획사로 한시대를 풍미했습니다. <지구레코드>를 반석에 올린 인물이 이미자였고, 나중에 1980년대에 가요계를 제패하게 되는 조용필도 <지구레코드> 소속 가수가 되었습니다.

 

   1964년에는 그 유명한 <동백아가씨>가 탄생했습니다. 작곡가 백영호 선생이 작곡한 <동백아가씨>는 영화의 주제가로 제작된 노래였고, 본래는 당대의 인기 가수였던 최숙자라는 가수가 부르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사정이 있어서 이 노래를 부를 가수가 이미자로 변경되었습니다. 영화 <동백아가씨>는 최초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실패했었지만, <동백아가씨> 노래가 대히트를 치게 되면서 영화도 재개봉되었습니다. 재개봉된 영화 <동백아가씨>는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64년에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라디오 방송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35주 연속 1위라는 불멸의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부문의 역대 기록에서는 1964년 이미자의 <동백아가씨>35주 연속 1위로 역대 1위 기록을 달성했고 1981년 조용필의 <고추잠자리>24주 연속 1위로 역대 2위 기록을 달성한 바 있습니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초유의 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미자의 등장 이전에도 전설적인 국민가수와 국민가요의 존재가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이전까지는 공식적인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나 통계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가수와 노래의 인기 여부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서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1960년대 이후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이 개국되고 공식적인 가요 차트나 통계가 확립되기 시작한 이후,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각종 신기록을 달성한 역대 최고의 히트곡으로 등극했습니다.

 

   1964<동백아가씨>의 히트에 대한 기록이 언급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기록은 ‘35주 연속 1라는 기록입니다. 이와 함께 당시 시점에서의 역대 최다 음반판매 기록도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음반을 몇 장 판매했다는 설명만으로는 그 인기를 체감하기가 다소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이미자의 음반 판매 기록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점유율입니다. 당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그 시절 발매된 LP 음반 중에서 무려 70%의 판매 점유율을 기록했습니다. 이미자가 너무 독주하다 보니까 시중에서 음반이 판매될 때 이미자의 음반을 구입하려면 다른 음반도 함께 구입해야 하는 조건이 붙는 식으로 일종의 끼워팔기가 성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미자는 <동백아가씨>의 히트에 힘입어서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가수로 등극했고 1960년대 가요계를 제패한 전설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그러나 이미자의 최대 히트곡이었던 <동백아가씨>35주 연속 1위라는 불멸의 기록을 달성한 뒤, 얼마 후에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노래가 왜색풍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이 때문에 이미자의 대표곡인 <동백아가씨>는 약 2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방송에서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과거 1960~1970년대 대중가요의 역사를 조사하면서 저는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음악에 관심이 많은 매니아층이나 평론가 집단에서는 트로트 음악은 기득권의 음악이고 ROCK 음악이나 힙합 음악은 저항 음악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한국 대중음악사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대중가요 역사와 청년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도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서 청년문화가 탄압받고 트로트 음악이 성행하면서 대중음악이 퇴보했다는 레퍼토리는 지겨울 정도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설명 방식이었습니다.

 

   그동안 군사독재 정권이 청년 문화를 탄압하고 ROCK 음악을 탄압하면서 트로트를 밀어줬다는 왜곡된 인식이 자리잡아 왔었는데, 막상 제대로 조사를 하다 보니까 트로트 또는 전통가요를 대표하는 인물인 이미자는 그 누구보다도 극심한 탄압을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이미자는 자신의 3대 히트곡을 비롯한 수많은 노래들이 금지곡으로 묶이며 누구보다도 극심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트로트를 대표하는 인물이 이토록 탄압을 받았는데도 트로트가 기득권의 음악이다? 여러분, 이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시나요?

 

   대한민국의 대중가요 역사에서 트로트 내지는 전통가요는 단 한 차례도 기득권의 음악이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왜색풍이라느니, ‘뽕짝이라느니, 저속하다느니 하는 모욕적인 언사를 들으며 탄압의 대상이 되었고, 민주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기득권의 음악이라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음악이라는 편견으로 인해 배척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양극단을 달리는 두 진영 모두에게 탄압 또는 배척의 대상이 되어왔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로트가 끊임없는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한국인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2020년대에 들어서 다시한번 트로트 열풍이 불면서 전통가요의 전설들의 존재가 다시 소환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트로트는 오랜 세월 동안 정치적으로 양극단의 진영 모두에게서 탄압과 배척의 대상이 되었고, 음악 매니아들과 평론가들에게 평가절하와 역사왜곡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하지만 전통가요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는 한국인의 노래였고, 끊임없이 그 생명력을 이어왔던 것입니다.

 

   전통가요의 전설인 이미자의 노래들도 그러했습니다. 이미자의 3대 히트곡인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를 비롯해서 수많은 노래들이 금지곡으로 묶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그 노래들을 끊임없이 부르면서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것입니다. 이미자는 <동백아가씨>의 히트로 인해 스타덤에 올랐지만, 자신의 대표적인 히트곡들이 연달아서 금지곡으로 묶이면서 한때 가수 생활에 회의를 느낄 정도로 고비가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자의 노래를 변함없이 사랑했던 대중들에 의해서 힘을 얻고 노래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1965년부터는 작곡가 박춘석 선생이 <지구레코드>의 전속 작곡가가 되면서 이미자와 콤비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박춘석 선생이 이미자를 위해 최초로 만들어준 노래는 그 유명한 <흑산도 아가씨>였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일간지의 사회면을 장식했던 흑산도 어린이들의 서울구경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고 흥미를 느꼈던 박춘석 작곡가와 정두수 작사가가 만든 노래라고 합니다.

 

   <흑산도 아가씨>를 계기로 <지구레코드 작곡가 박춘석 작사가 정두수 가수 이미자>의 라인업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광복 이전 최고의 작곡가는 박시춘 선생이었고 광복 이후 최고의 작곡가는 박춘석 선생이었습니다. 박춘석 작곡가는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를 비롯한 당대의 인기 가수들의 수많은 노래를 작곡하며 이른바 박춘석 사단을 구축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이미자와 황금 콤비를 이루며 한시대를 풍미했습니다.

 

   1966년에 이미자는 <섬마을 선생님>을 발표했는데, <섬마을 선생님><동백아가씨> 이후의 최대의 히트곡으로 등극했습니다. 그러나 이 노래도 얼마 후에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여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를 표절했다는 표절 시비에 걸린 것이었습니다. 이 노래를 작곡한 박춘석 선생이 너무 억울해서 일본 측에 수소문을 해봤더니 이미자의 노래가 먼저 나온 노래였고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가 나중에 나온 노래였습니다. 먼저 나온 노래가 나중에 나온 노래를 표절했다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섬마을 선생님>은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동백아가씨><섬마을 선생님>에 이어서 이미자의 3대 히트곡 중 하나인 <기러기 아빠>도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노래가 비탄조라서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였습니다. 이미자의 3대 히트곡은 모두 금지곡이 되어서 약 2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방송에서 이미자의 대표곡들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87년 민주화 이후 해금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이미자의 대표곡들에 대한 족쇄가 풀리게 됩니다.

 

   이미자의 히트곡들 중 상당수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고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페이지를 풍미한 불멸의 국민 드라마의 주제곡을 이미자가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드라마 주제곡은 1970년에 TBC에서 방영된 드라마 <아씨>1972K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여로>의 주제곡이었습니다. <아씨>는 방영될 당시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2년 뒤에 <여로><아씨>의 기록을 깨뜨리며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여로>라는 제목은 문자 그대로 여자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이 드라마에는 영구 캐릭터의 원조가 등장하는데, 당대의 명배우 장욱재 씨가 영구역할을 맡았습니다. 1980년대에 심형래가 바보 연기로 인해서 최고의 스타 개그맨으로 떠오르게 되는데, 심형래의 영구캐릭터는 드라마 <여로>에 나오는 영구라는 등장인물에서 그 영감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미자가 부른 <여로>의 주제곡도 국민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고, 2014<불후의 명곡>에 이미자가 전설로 출연했을 때는 임태경이 <여로>를 불렀습니다. 이미자는 당대의 유명 작곡가였던 나화랑, 백영호, 박춘석, 박시춘 등의 노래를 불러서 수많은 히트곡들을 남겼습니다. 이미자의 가수 인생을 통틀어서 발표한 수많은 노래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히트곡의 목록을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열아홉 순정>, <황포돛대>, <울어라 열풍아>, <서울의 아가씨>, <동백아가씨>, <흑산도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엘레지의 여왕>, <홍콩의 왼손잡이>, <저 강은 알고 있다>, <지평선은 말이 없다>, <빙점>, <그리움은 가슴마다>, <두견새 우는 사연>, <유달산아 말해다오>, <여자의 일생>, <서울이여 안녕>, <황혼의 부르스>, <사랑했는데>, <아씨>, <여로>, <못 잊을 당신>, <삼백리 한려수도>, <낭주골 처녀>, <정든 섬>, <안 오실까봐>, <임이라 부르리까>, <모정>, <노래는 나의 인생>, <내 노래 40>, <내 삶의 이유 있음은>,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 <내 영혼 노래가 되어>

 

   이미자의 수많은 히트곡들 중에서도 그 의미가 가장 남다른 대표곡들을 꼽는다면 우선은 3대 히트곡인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를 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 <흑산도 아가씨>가 포함돼서 4대 히트곡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데뷔곡인 <열아홉 순정>, 대한민국 현대사의 국민드라마의 주제곡인 <아씨><여로>, 데뷔 30주년 기념곡인 <노래는 나의 인생>, 데뷔 50주년 기념곡인 <내 삶의 이유 있음은>, 데뷔 60주년 기념곡인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가 가장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노래들입니다.

 

   이미자는 양대 방송국의 연말 가요대상 시상식에서 각각 세 차례씩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미자는 <MBC 10대가수 가요제>에서는 1967년과 1968, 1970년에 최고 인기가수를 수상했고 방송가요대상>에서는 1968년부터 1970년까지 3년 연속으로 여자가수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당대 최고 권위의 <MBC 10대가수 가요제>에서 가수왕이라고도 불리는 최고 인기가수의 역대 수상 횟수에서는 조용필이 통산 6회 수상으로 역대 최다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이미자와 남진이 통산 3회 수상으로 역대 공동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미자의 통산 3회 수상 기록에는 <동백아가씨>의 프리미엄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역대 2위라는 점이 더욱 대단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미자의 최고의 전성기였던 1964년에는 가요대상 시상식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방송가요대상>1965년에 출범했고 <MBC 10대가수 가요제>1966년에 출범했습니다. <동백아가씨>35주 연속 1위를 하던 시절에는 아예 가요대상 자체가 존재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 1960년대 후반의 성적만으로도 가요대상 통산 3회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기 때문에 그 기록이 더욱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또 그렇게 따지면 조용필의 통산 6회 수상 기록에도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프리미엄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기록이기는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역대 가요대상 수상 횟수에서 조용필이 1, 이미자가 2위 이렇게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동백아가씨>의 프리미엄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기록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차, 포를 다 떼고도 1등과 2등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조용필, 이미자 두 분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이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미자는 <MBC 10대가수 가요제>의 연도별 10대가수 수상 기록에서도 통산 12회 수상의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1966년부터 1975년까지는 10회 연속 수상이었고 1977년과 1978년에는 2년 연속 수상이었습니다. 10대가수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던 1976년과 1979년에도 이미자는 특별가수상을 수상했습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진행된 <MBC 10대가수 가요제>에서 이미자는 14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모두 출연해서 상을 받았던 단골손님이었습니다.

 

   <MBC 10대가수 가요제>의 연도별 ‘10대가수수상 횟수 기록을 살펴보면 이미자가 통산 12회 수상으로 역대 최다 수상자로 기록되었고, 전영록이 통산 10, 이은하가 통산 9, 조용필이 통산 8, 하춘화가 통산 7, 남진, 문주란, 혜은이, 주현미, 이선희가 통산 6, 나훈아, 윤시내가 통산 5회 수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반 대중들의 인식 속에서 이미자와 패티김은 1960년대의 대표 가수, 남진과 나훈아는 1970년대의 대표 가수로 분류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박 겉핥기 식으로 편의상 분류해 놓은 것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의 활동 연대나 전성기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정작 1970년대의 대표 가수로 알려진 남진과 나훈아도 1970년대 중후반에는 오랜 침체기 내지는 공백기를 가졌다가 1980년대 이후에 다시 가요계로 돌아왔었습니다. 반면에, 이미자는 1970년대 중후반에도 별다른 공백기 없이 여전히 가요계의 최정상급 스타로 군림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미자는 일본 진출에서도 의미 있는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미자는 19666월에 일본으로 출국해서 일본의 <빅터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동백아가씨><황포돛대> 두 곡을 일본어로 부른 음반을 발매했습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옛날 신문 기사를 검색해 보면 그 시절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196664일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당초 일본의 <빅터레코드> 측에서는 <황포돛대> 한 곡만을 취입할 것을 제안했지만, 이미자 측에서 <동백아가씨>를 취입하지 않으면 조건에 응하지 않겠다고 해서 결국 두 곡을 취입하게 됐다고 합니다.

 

   196672일 매일경제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미자는 71일 아침에 일본 TV 방송에 첫선을 보였습니다. 이미자는 <기지마 모닝쇼>라는 프로그램에서 <동백아가씨><황포돛대> 두 곡을 일본어로 불렀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사회자는 이미자를 미소라 히바리에 비교하면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일본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는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시는 내용일 텐데, 당시에 일본에서 미소라 히바리는 엔카의 여왕이자 일본 최고의 국민가수였고, 한국에서 이미자는 엘레지의 여왕이자 한국 최고의 국민가수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종종 비교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었습니다.

 

   1966919일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미자는 924일에 일본에서 마지막 리사이틀을 가졌습니다. 당시의 신문 기사를 그대로 여기에 한번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24일 마지막 공연. 체일중인 이미자. 체일중인 가수 이미자 양은 24일 동경 상께이 홀에서 마지막 리사이틀을 갖는다고. 이 양의 이번 공연에는 후랑크 나가이, 소앵자매, 천건이, 흥전청 등 일본의 톱 싱거(singer)들이 찬조출연한다. 곳곳에 나붙은 포스터에는 한국의 명성 이미자라는 이름과 영어로 이름이 써 있을 뿐 말썽을 일으켰던 요시꼬리라는 일본 이름은 써 있지 않다. 합동.”

 

   한편 1966년에 이미자가 일본에서 활동하던 당시에 일본 언론에서는 이미자의 이름을 리요시꼬라고 표기했었는데,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외무부에서는 주일대사관에 이에 대한 진상 조사를 지시하는 등의 마찰이 있었다고 합니다. 박성서 씨의 칼럼에 따르면 음반에는 이미자의 이름을 영문으로 ‘Lee Mi Ja’로 표기했지만 일본 언론들이 일방적으로 리요시꼬라고 표기했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외무부에서는 이미자가 일본 이름으로 개명한 것으로 오해해서 마찰이 있었지만 이미자의 솔직한 해명으로 일단락되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1966711일 경향신문 기사에 이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에 그 기사를 그대로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자 양 등 개명했으면 소환. 외무부서 지시. 외무부는 일본에 가 있는 인기가수 이미자 양과 일본 동경 오리언즈 프로야구 팀 투수로 입단한 이원국 군이 일본에서 일본 이름으로 행세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 11일 상오 주일대사관에 진상조사를 하여 사실인 경우 여권을 취소하고 본국으로 소환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이미자 양은 리요시꼬로 불리고 있으며 이원국은 이를 없애고 겐 씨로 통하고 있다고 보도됐었다.”

 

   이미자는 일본에서 3개월 동안의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국해서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귀국 기념 음반과 귀국 기념 공연도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한편 이미자가 자신의 노래를 일본에서 일본어로 불렀던 음반이 우리나라에 거꾸로 밀반입되면서 시중에 해적판이 나돌아서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한 당시의 신문 기사도 한번 그대로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966116일 조선일보 기사입니다.

"이미자 일어반 밀수. 예륜서 단속 건의. 4일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는 가수 이미자 양이 일본에 가서 일본말로 취입한 <사랑의 붉은 등불>, <동백아가씨><이별의 비가>, <황포돛대>의 음반을 밀수입 복제해서 시중에 팔고 있는 사실을 심의하고 관계 당국에 단속해줄 것을 건의했다.”

 

   다음은 1966124일 조선일보 기사입니다.

"이미자 일어 음반 700장 복사 판매. 대도 레코드사 등 입건. 서울지검 김진석 검사는 2일 인기가수 이미자 양의 일본어판 음반을 복사판매한 대도레코드사 대표 김종수 씨 등 4명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검찰에 의하면 대도레코드사는 지난 11월 초부터 이미자 양이 일본서 부른 황포돛대와 동백아가씨의 일본어 레코드판을 복사하여 7백여 장을 시중에 팔아왔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이미자는 일본에서 몇 차례 더 활동을 가졌습니다. 198110월에는 일본의 한 TV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이미자와 일본의 미소라 히바리가 동반 출연하게 되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일본 가요계에서 엔카의 원류는 한국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국내 가요계가 술렁거리게 되었고, 오히려 우리나라의 언론사에서 이에 대한 비판 기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1981615일 동아일보의 기사를 그대로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일 연가(연예계)의 한국원유설. 상술에서 나온 것. 이미자, 미소라 히바리 TV 대결 계기로 본다. 근거 없는 낭설. 우리 대중문화 오도 우려. 되레 한국 가요의 일본화가 더 큰 문제.

 

열창 이성애. 엔카의 원류를 찾다. 일본 토시바 레코드사가 지난 76년 찍어낸 이성애의 일본말 노래 레코드 재킷에 적힌 글이다.

 

이성애는 75~77년 일본에서 활동한 한국 가수. 이미 은퇴하고 결혼해서 잊혀져 가고 있는 이름이지만 일본에서 노래부른 한국 가수 중 이미자와 함께 가장 크게 히트했던 가수다. ‘엔카야말로 일본의 토착 노래이며 일본적 블루스다. 이 엔카의 전신은 무엇인가? 그러나 엔카의 모체는 한국 가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일본 가요계의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 있다. 이를 실증한 가수가 이성애다.’

 

이는 일본의 가요 평론가 미하시(삼교일부)가 그녀의 레코드를 소개하면서 쓴 글이다. 이 글이 발표되자 한국의 가요계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일본 가요의 대표적 형태인 엔카가 그 원류를 한국에 두고 있다는 일본인 전문가의 글은 꽤 고무적이었던 것 같다. 어떤 가요인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사실까지 들춰가며 엔카의 원류는 한국이라는 사실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 한국과 일본의 두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와 미소라 히바리가 오는 101일 일본 마이니치 TV의 대형 특집쇼에 함께 출연하게 된다는 얘기가 알려지자 가요계 일각에서 또 엔카의 원류는 한국이라는 주장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미소라 히바리는 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일본의 가요계를 휩쓸었던 여가수. 이미자는 그녀대로 일세를 풍미한 대형가수다. 두 가수가 일본에서 대결한다는 소식은 많은 얘깃거리를 제공할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정상적인 사람의 상식으로 생각해볼 때 엔카의 원류는 한국이라는 주장은 허황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1900년부터 들어온 찬송가와 군악으로 새로운 노래를 듣게 된 한국인들은 35년에 걸친 일본의 식민지 시절, 그중에서도 1935년을 전후한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 수행 과정에서 거의 자신의 목소리를 잃고 왜색 일변도의 가요를 생활화하게 됐다. 그 후 아직까지 왜색 시비는 끊이지 않고 있다. 20여 년 전부터는 미국의 유행 음악이 많이 흘러들어왔고 10여 년 전부터는 우리의 것을 찾자는 젊은이들의 시도가 우리 가요를 보다 다양하게 하는 데 공헌하고 있다.

 

이런 가요사의 줄기를 더듬어볼 때 한국의 소위 뽕짝, 즉 트롯이 일본 엔카에 원류를 두고 있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있지만 그 반대는 결코 성립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왜 일본 가요계가 이런 주장을 하게 됐나를 생각하면 이의 허구는 의외로 쉽게 드러난다. 일본 시장과 한국 시장을 동시에 겨냥한 장삿속이 바로 그것이다. 또 문화적 동질성을 자꾸 주장해서 한국을 자기네의 레코드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장기 포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원로 가요인 황문평 씨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어떻게 일본의 한 레코드 장수가 장삿속으로 만들어낸 표어가 우리 대중문화를 오도할 수 있게 됐는지 한심하기 그지없다.’고 목청을 돋운다. 이 주장에 동조한 가요인들의 의도가 불순했든지 아니면 편협한 쇼비니즘(국수주의)에 의한 자위행위로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는 것.

 

신중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센세이션에 의한 장사 수단으로밖에 이를 해석할 수 없다고 어떤 가요인은 말한다. 우리 가요가 내포하고 있는 왜색의 냄새는 큰 문제다. 그러나 우리 가요의 과거와 현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앞날을 마련해가는 작업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강상헌 기자.”

 

   한편 1985년에는 이미자와 남진이 일본에서 한국의 대표 가요들을 부른 음반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다룬 198587일 조선일보 기사를 그대로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가요 앨범 펴내. 이미자-남진 일본서. 이미자와 남진이 한국 가요 50년사의 대표곡 24곡을 부른 2장짜리 디스크가 일본에서 5일부터 시판되고 있어 화제다. 한국 가요의 계보를 듣는다라는 타이틀의 이 앨범은 일제시대 유행곡인 폐허에서 최신곡인 잃어버린 30년까지 연대별로 24곡을 수록했다. 이 디스크를 낸 <킹레코드>사는 이미자를 한국 연가의 여왕’, 남진을 베테랑 가수라고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밖에도 198696일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작곡가 박춘석과 가수 이미자, 방미, 오승근 등 총 6명이 일본 민중음악협회의 초청을 받아서 15일가량 머무르면서 8개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가졌다고 합니다.

 

   1999319일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이미자는 일본 NHK의 특집 방송을 녹화하면서 재일교포 작가 양석일 씨와 대담을 가졌습니다. 여기에 그 기사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NHK 특집방송 녹화한 이미자 씨. 한일 가수 왕래로 문화교류 첫 발을.

제 노래에 특별히 한이 서려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일제 36, 6.25 등을 거쳐온 경험이 그냥 노래로 흘러나오는 것이겠죠.’

 

17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가요계 여왕이미자 씨가 재일교포 작가 양석일 씨와 새로운 한일 시대를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일본 NHK가 내달 방송할 3부작 특별 프로의 1편으로, 한국 톱스타를 소개하며 바람직한 한일 대중문화 교류의 향방을 짚어보는 기획.

 

작년 우리말로 번역된 소설 피와 뼈의 작가인 양씨는 유미리의 소설을 영화화한 박철수 감독의 가족 시네마에 아버지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같은 핏줄이면서 통역을 사이에 두고 얘기한 것이 답답했던지 두 사람은 대담이 끝난 후 긴장을 풀었다. 양씨는 이미자 씨는 일본으로 말하면 미소라 히바리에 비견되는 대스타신데 너무나 서민적이라 놀랐다.’고 했다.

 

이씨는 동백아가씨가 왜색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을 때를 돌아보며 일본 총리의 방한 공식만찬 때 고 박정희 대통령 요청에 따라 동백아가씨를 불렀는데 아주 좋아했다.’면서 금지곡인 줄 대통령이 몰랐던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씨는 일본어 노래를 12곡 취입했다.’면서 가수들의 잦은 왕래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준호 기자. 사진: 주완중 기자.”

 

   이미자는 19656월에 월남(베트남) 비둘기부대 위문공연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당시 파월 장병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동백아가씨>를 마치 부대가처럼 불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내용을 담은 신문기사도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1965531일 경향신문 기사입니다.

 

"파월장병위문단 연예협회서 구성. 구봉서, 후라이보이 등 인기 커미디언들과 이미자, 이금희, 위키리 등 인기가수 10여 명으로 구성된 파월장병 위문단이 61일 월남으로 떠난다. 연예협회 부이사장인 김성진 씨가 인솔할 위문단 일행은 국방부의 지원을 얻어 비둘기부대를 위문한 다음 약 8일간에 걸쳐 월남 정부군과 현지 주둔한 미군들도 찾아 위문공연을 갖는다. 또한 이들은 자유월남방송에도 출연할 예정.”

 

   다음은 1965612일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비둘기 위문 실황. DBS서 방송. 월남에 가 있는 비둘기부대 위문단의 위문공연 실황 녹음방송이 13일 아침 9시부터 DBS 동아방송의 <아침의 희망음악시간>에 나간다. 출연자는 이미자, 이금희, 유주용, 위키리, 구봉서, 곽규석 씨 등.

 

또 비둘기부대에서 후라이보이 곽규석 씨가 녹음해 보낸 것을 장병들이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가 14일 아침 9시부터 역시 같은 시간에 나간다. 이 프로는 장병의 멧세지와 함께 장병이 선사하는 음악이 깔린다.

 

이밖에도 비둘기 장병들의 일과를 스케치한 월남통신 시리즈는 매일 오후 920분부터, 그리고 위문공연 후의 이야기를 <위문단원들의 표정>에 엮어 13일 아침 725분에 방송한다.”

 

   이미자의 노래는 고국을 그리워하는 해외 동포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월남에 파병된 장병들과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 재일교포에 이르기까지 해외 동포들은 이미자의 노래를 들으며 뜨거운 눈시울을 적셨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최고의 국민가수이자 전통가요의 여왕이었던 이미자는 패티김과 함께 당대를 풍미한 라이벌 관계를 이루었습니다. 패티김은 도시적이고 화려한 서구풍의 외모와 패션을 선보였고, 팝 스타일의 노래를 선보였습니다. 이미자는 수수한 옷차림에 정통 트로트를 고수했습니다.

 

   패티김은 주로 TV 화면에서 화려하게 조명을 받았고, 이미자의 노래들은 라디오를 통해서 끊임없이 흘러나왔습니다. 브라운관에서는 패티김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이미자의 노래는 대중들의 정서 속에 조용하게 스며들어갔습니다. 패티김의 각종 기록에는 주로 최초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고, 이미자의 각종 기록에는 주로 최다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어느 시대에서든지 항상 TV 화면에서는 당대를 풍미한 화려한 캐릭터의 아이돌 스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지만, 대중들의 가슴속에는 정통 트로트 내지는 전통가요가 잔잔하게 스며들며 일상생활과 정서 속에 그대로 녹아들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TV 화면에서는 당대 최고의 아이돌 스타였던 패티김이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이미자의 노래들은 대중들의 정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TV 화면에서는 당대 최고의 아이돌 스타였던 남진이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나훈아의 노래들이 대중들의 정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2000년대 이후에도 TV 화면에서는 항상 당대 최고의 아이돌 스타들이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이미자, 나훈아, 조용필의 노래들은 대중들의 가슴속에 끝없이 살아숨쉬며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국민가수로서 끊임없이 그 생명력을 유지했습니다.

 

   1994년에 KBS <빅쇼>에서는 사상 최초로 이미자와 패티김의 합동 공연이 성사되었습니다. 전성기 시절에 이미자와 패티김의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고, 미묘한 신경전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4년에 처음으로 이미자와 패티김이 의기투합해서 함께 무대 공연을 펼치게 되면서, 두 사람은 라이벌에서 동반자로 관계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때의 인연을 계기로 해서 2005년에는 이미자, 패티김, 조영남이 의기투합해서 <3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에 전설의 작곡가 박춘석 선생이 타계했을 당시에 KBS<아침마당>에서는 박춘석 선생을 추모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했는데, 이때도 이미자와 패티김이 함께 출연했습니다.

 

   이미자는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가수 중 가장 많은 음반을 발매하고 가장 많은 노래를 취입하며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1969년 데뷔 10주년에는 1000곡 돌파 기념 리사이틀을 가졌습니다. 1979년 데뷔 20주년에는 대한극장에서 기념공연을 가졌습니다. 1989년 데뷔 30주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열었습니다. 한국 대중가수의 세종문화회관 공연은 1989년 이미자와 패티김이 최초로 성사시켰는데, 시간적으로 한 달 먼저 공연을 치른 패티김이 최초라는 수식어를 차지했습니다.

 

   이미자의 데뷔 30주년 세종문화회관 공연이 성사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세종문화회관의 운영자문위원회에서는 이미자의 공연장에는 고무신짝들만 모일 것이라며 모욕을 주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미자의 팬들을 수준 낮은 사람들로 매도하며 비하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미자는 처음에는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거절당했다가 고건 서울시장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가까스로 공연을 성사시켰습니다. 막상 공연이 개최되었을 때는 민정당 박태준 대표, 평민당 김대중 총재, 민주당 김영삼 총재, 공화당 김종필 총재가 모두 참석하면서 여야 4당 지도부가 모두 관객석에서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이미자는 데뷔 30주년 공연 당시 금지곡에서 해금된 자신의 대표곡들을 마음껏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미자는 1989년에 데뷔 30주년 기념곡인 노래는 나의 인생을 발표했는데, 2014년과 2017<불후의 명곡> 출연 당시에는 이미자가 무대에서 직접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2020년에는 <미스터트롯>에서 임영웅이 이미자의 <노래는 나의 인생>을 부르며 다시한번 화제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에 조용필이 등장한 이후로 이미자가 주도하던 정통 트로트에 기반을 둔 전통가요는 젊은 세대들에게 서서히 외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30대 이상의 중장년층은 여전히 전통가요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었고, 이미자의 인기와 영향력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실시됐던 몇몇 설문조사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데, 이미자의 전성기가 한참 지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이미자가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82년에 한국갤럽에서 실시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국내 가수 순위에서 이미자는 조용필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조용필이 1, 이미자가 2, 나훈아가 3, 김정구가 4, 송창식이 5, 혜은이가 6, 조영남이 7, 패티김이 8, 이은하가 9, 조미미와 이정희가 공동 10위를 차지했습니다.

 

   1984년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이미자가 조용필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이미자가 지난해 1위였던 조용필을 제쳤다고 나와 있습니다. , 조용필이 1982년과 1983년에 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뒤 1984년에는 이미자가 1위를 했다는 뜻입니다. 1984년 순위에서는 이미자가 1, 조용필이 2, 나훈아가 3, 김연자가 4, 패티김이 5, 혜은이가 6, 윤시내가 7, 조영남이 8, 이용이 9, 이은하가 10위를 차지했습니다.

 

   1985년에는 KBS1 라디오에서 20~60대 주부 600명을 대상으로 주부들이 좋아하는 가수설문조사를 했는데 이미자가 1, 조용필이 2, 이선희가 3, 이은하가 4, 패티김이 5, 나훈아가 6, 조영남이 7, 혜은이가 8, 나미가 9, 윤시내가 10위를 차지했습니다.

 

   1987년에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가수 인기 순위에서는 남자 가수 순위에서는 조용필이 1, 전영록이 2, 최성수가 3, 구창모가 4, 김범룡이 5, 나훈아가 6위를 차지했고 여자 가수 순위에서는 주현미가 1, 이선희가 2, 최진희가 3, 이미자가 4, 정수라가 5, 김완선이 6위를 차지했습니다.

 

   1988년에 리스피아르 조사 연구소에서 발표한 인기 순위에서는 남자 가수 순위에서는 조용필이 1, 전영록이 2, 최성수가 3, 현철이 4위를 차지했고 여자 가수 순위에서는 주현미가 1, 이선희가 2, 이미자가 3위를 차지했습니다.

 

   1994년에는 한국갤럽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한국인>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운동선수 부문에서는 황영조, 성악가 부문에서는 박인수, 정치인 부문에서는 박찬종, 기업인 부문에서는 김우중, 문인/작가 부문에서는 이문열, 아나운서/앵커맨 부문에서는 엄기영, 탤런트/영화배우 부문에서는 김혜자, 개그맨/코미디언 부문에서는 이휘재, 만화가 부문에서는 이현세, 그리고 가수 부문에서는 이미자가 뽑혔습니다.

 

   1996년에는 리서치 앤 리서치에서 서울, 수도권 지역 주부 500명을 대상으로 주부들이 좋아하는 애창곡과 가수 순위를 조사했는데, 가수 순위에서는 이미자가 1, 김건모가 2, 신승훈이 3, 패티김이 4, 설운도가 5, 주현미가 6, 김수희가 7, 조용필이 8, 노사연이 9, 최진희가 10위를 차지했습니다.

 

   1998년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50주년을 맞이해서 국민 여론조사를 통해서 각 분야별로 대한민국 50년의 50대 인물을 선정했습니다. 여기에 포함된 분야별 50대 인물 중에서 문화, 예술계의 인물 중 현역은 지휘자 정명훈, 가수 이미자, 조용필, 탤런트 최불암 이렇게 4명뿐이었고 정명훈이 문화, 예술 분야 1위였습니다. 가수 중에서는 이미자와 조용필 두 사람만이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순위는 이미자가 5, 조용필이 8위였습니다.

 

   1998년에 조선일보에서 전문가 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건국 이후 가수 베스트 50> 설문조사에서는 조용필이 1, 이미자가 2, 나훈아가 3, 서태지가 4, 남인수가 5, 배호가 6, 패티김이 7, 현인이 8, 김정구가 9, 남진이 10위를 차지했습니다.

 

   1998년에 MBC에서 한국갤럽에 의뢰해서 조사한 <건국 이후 최고 연예인> 설문조사에서는 김국진이 1, 최불암이 2, 조용필이 3, 김희선이 4, 최진실이 5, 임창정이 6, 안성기가 7, 유승준이 8, 김혜자가 9, 이미자와 HOT가 공동 10위를 차지했습니다. 가수 부문 순위에서는 가수 전체 순위에서 조용필이 1, 임창정이 2, 유승준이 3위였고 연령별로는 10대에서는 HOT1, 40대 이상에서는 이미자가 1위였습니다.

 

   199911월에 월간조선에서 현역 작곡가들과 작사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20세기 한국 최고 가수> 순위에서는 조용필이 1, 이미자가 2, 나훈아가 3, 패티김이 4, 남인수가 5, 서태지와 아이들이 6, 배호가 7, 송창식이 8, 현인과 김건모가 공동 9위를 차지했습니다.

 

   199912월에 MBC에서 한국갤럽에 의뢰해서 조사한 <20세기 최고 가수> 순위에서는 조용필이 1, 나훈아가 2, 이미자가 3, 조성모가 4, 송대관이 5, 설운도가 6, 현철이 7, 엄정화가 8, 김건모가 9, 주현미가 10위를 차지했습니다.

 

   2004년에 한국갤럽에서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40가지 - 사람편>이라는 제목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가수 부문에서는 이미자가 1, 나훈아와 비가 공동 2, 조용필이 4, 현철이 5위를 차지했습니다. 운동선수 부문에서는 이승엽이 1, 박찬호가 2, 안정환이 3위를 차지했습니다. 탤런트 부문에서는 최불암이 1, 이영애가 2, 권상우가 3위였습니다.

 

   2009년에 한국갤럽에서 발표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사람 - 가수>라는 제목의 설문조사에서는 장윤정이 1, 빅뱅이 2, 태진아가 3, 이미자가 4, 소녀시대가 5, 나훈아가 6, 조용필이 7, 현철과 손담비가 공동 8, 이승철과 송대관이 공동 10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미자는 196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실시된 각종 설문조사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하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심지어 2004년과 2009년에 실시된 설문조사에서도 1960년대의 인물인 이미자와 1970년대의 인물인 나훈아, 1980년대의 인물인 조용필이 꾸준히 상위권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가수 중에서 순위를 매기는 각 부문의 기록이나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경우는 조용필이 1위인 경우가 많지만, 가끔씩은 조용필도 1위가 아닐 경우가 있었습니다. 조용필이 1위가 아닌 경우, 조용필을 제치고 1위에 오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은 이미자였습니다.

 

   일반적으로 히트곡이 가장 많은 가수의 이름을 거론할 때는 이미자, 나훈아, 조용필의 이름이 번갈아가면서 거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오늘날의 10대와 20대가 보기에는 누가 정말로 히트곡이 더 많다는 뜻인지 좀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표현을 할 때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미자, 나훈아, 조용필 3인방의 캐릭터 차이에 좀 더 주목해야 합니다.

 

   조용필은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도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히트곡이 가장 많은 가수입니다. 그리고 나훈아는 어르신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방 애창곡이 가장 많은 가수입니다. 그리고 이미자는 가수 경력 전체를 통틀어서 발표한 음반의 수와 취입한 노래의 수가 가장 많은 가수입니다. 이미자와 나훈아는 전통가요한우물만 파면서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 있는 인물이고 조용필은 전통가요에서부터 현대가요까지 모두 섭렵한 인물입니다.

 

   1990년에 이미자가 기네스북에 올랐을 당시까지의 가수 경력을 통틀어서 발표한 음반의 수는 530장이었고 취입한 노래의 수는 2069곡이었습니다. 기네스북에 오른 이후에도 3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미자는 꾸준히 가수로 활동하면서 음반도 몇 장 더 내고 신곡도 꾸준히 발표했습니다. 2020년대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 이미자가 발표한 노래의 수는 공식적인 기록이 발표된 적은 없지만, 2500곡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미자는 1989년에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을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한 데 이어서 1999년에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도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했습니다. 2009년에는 데뷔 50주년을 맞이해서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투어 콘서트를 개최했습니다.

 

   이미자는 데뷔 50주년 기념곡으로 <내 삶의 이유 있음은>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는데, 이 노래는 이미자가 2014년에 <불후의 명곡>에 출연했을 당시 무대에서 직접 노래를 불렀고, 2020년에는 <미스터트롯>에서 영탁이 이미자의 <내 삶의 이유 있음은>을 불러서 다시한번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미자는 2000년대 이후에도 뜻깊은 공연들을 통해서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해 왔습니다. 2002년에는 평양에서 이미자의 공연이 성사되었는데, 이 공연의 실황은 <평양 동백아가씨>라는 제목으로 남북한에서 동시 생중계되었습니다. 2012년에는 MBC 창사 51주년 기획으로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콘서트가 개최되었습니다. 노래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섬인 흑산도에서 뜻깊은 공연이 성사되었습니다.

 

   2013년에는 독일에서 <이미자의 구텐탁 동백아가씨>라는 제목의 콘서트가 개최되었고 MBC에서 공연 실황을 중계했습니다. 이 공연은 한독 수교 130주년근로자 파독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된 공연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이미자의 노래들은 해외 교포들에게 위안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미자가 직접 해외 교포들 앞에서 무대에 올라서 공연을 열게 된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 공연에는 조영남과 2PM이 특별 게스트로 참여했는데, 공연의 피날레에서는 이미자, 조영남, 2PM이 모두 함께 무대에 올라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2014년에 이미자는 KBS<불후의 명곡>에 처음으로 출연했습니다. 1부 오프닝에서 이미자는 무대에 올라서 데뷔 30주년 기념곡인 <노래는 나의 인생>을 불렀고, 2부 오프닝에서 이미자는 무대에 올라서 데뷔 50주년 기념곡인 <내 삶의 이유 있음은>을 불렀습니다. 전설인 이미자와 함께 음악평론가 임진모 씨와 가수 겸 작곡가 장욱조 씨도 특별히 초청을 받아서 이미자의 옆자리에 착석했습니다.

 

   2014<불후의 명곡 - 이미자 편>에서는 2부 방송이 진행되던 도중 독일 출신 트로트 가수 로미나가 무대에 올라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불렀습니다. 이미자는 <불후의 명곡> 방송에 로미나를 직접 초청한 데 이어서, 자신의 데뷔 55주년 기념 전국투어 콘서트에서도 로미나를 특별 게스트로 초청해서 공연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이로부터 몇 년 후에 로미나는 정식으로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2017년에 이미자는 KBS <불후의 명곡>에 두 번째로 출연했습니다. 이미자는 1부 오프닝에서 무대에 올라 데뷔 30주년 기념곡인 <노래는 나의 인생>을 불렀고 2부 오프닝에서 무대에 올라 데뷔 60주년 기념곡인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를 불렀습니다. 이번에도 전설 이미자의 옆자리에는 음악평론가 임진모 씨가 함께 착석했습니다.

 

   2019년에 이미자는 데뷔 60주년 기념곡인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를 발표했습니다. 데뷔 60주년 기념 음반이 정식으로 발매된 시점은 2019년이었지만, 이미자는 2017년에 <불후의 명곡>에 출연했을 당시에 무대에 올라서 직접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2019년에 KBS <불후의 명곡> 송년특집에서 이미자는 통산 세 번째로 출연했습니다. 프로그램의 피날레 무대에서는 이미자와 함께 모든 출연진이 함께 무대에 올라서 이미자의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를 함께 부르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2019년에 이미자는 데뷔 60주년을 맞이해서 구리아트홀에서 <이미자 효 음악회>라는 제목의 기념 공연을 개최했습니다. 공연 실황은 종편 채널인 TV조선에서 <이미자 노래인생 60년 기념음악회 -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습니다. 공연의 피날레 무대에서 이미자는 데뷔 60주년 기념곡인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를 부르며 뜨거운 눈물을 쏟았습니다.

 

   2020년에는 TV조선에서 주최한 오디션 프로그램인 <미스터트롯>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임영웅과 영탁이 양대 트로트 아이돌로 떠올랐는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이미자의 노래를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임영웅은 이미자의 데뷔 30주년 기념곡인 <노래는 나의 인생>을 불렀고, 영탁은 이미자의 데뷔 50주년 기념곡인 <내 삶의 이유 있음은>을 불렀습니다.

 

   2020년에는 TV조선 주최로 <1회 트롯어워즈> 시상식이 개최되었습니다. 이 시상식에는 임영웅과 영탁을 비롯한 미스터트롯 출신의 스타들이 총출동했고, 전통가요의 전설인 이미자, 남진, 하춘화, 주현미 등이 특별 초청되었습니다. 백스테이지에서는 이미자와 임영웅이 만남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이미자는 <1회 트롯어워즈>에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미자는 2009년에 한국의 대중가수 중에서는 최초로 은관문화훈장을 받는 등 총 3개의 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2015918일부터 2016228일까지 남이섬 노래박물관에서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이미자 특별전>이 열렸습니다. <재단법인 노래의 섬>이 이 전시회를 주최했고 음악 평론가 박성서 씨가 기획과 구성을 맡았습니다. 우리 전통가요의 살아 있는 전설 이미자의 음악 인생이 담긴 소중한 역사 자료가 박물관에 전시되는 매우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이제 제가 이미자의 가수 인생을 조사하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을까 합니다. 오프라인 공간에는 우리 전통가요의 역사에 대한 소중한 역사 자료라든지 기념관, 기념비, 박물관 같은 역사 유적지들이 잘 구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통가요의 역사를 연구하고 보존하고 계승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피땀을 흘리고 노력을 해 왔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전통가요의 살아 있는 전설 이미자를 기념하는 특별 전시회가 <남이섬 노래박물관>에서 열린 것도 아주 뜻깊은 행사였으며, 소중한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동안 이러한 역사를 계승하기 위해 피땀흘려 노력해 오신 분들께 진심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온라인 공간, 즉 인터넷에서는 이러한 소중한 역사 자료를 접하기가 어렵다는 부분입니다.

 

   오늘날의 10대나 20대들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발품을 팔아가면서 기념비나 기념관, 박물관을 찾아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 검색 몇 번으로 손쉽게 자료를 찾으려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네이버나 다음, 구글 검색조차 귀찮아 하고, 유튜브 검색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오프라인 공간에 비해 전통가요의 역사 자료가 잘 구축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미자와 같은 전설의 가수에 대한 정보를 찾는 데 있어서도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오늘날 50대 또는 60대 이상의 어르신 세대에게는 이미자가 최고의 전설이라는 것이 아주 당연한 상식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연령대가 어려질수록 이러한 역사를 알리고 전승하는 데에는 상당히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동안 오프라인 공간에서 역사 자료를 보존하고 인터넷에 그 자료를 일부 올려주신 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노력해 오셨는지 존경하는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인터넷에서는 자료가 많이 빈약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이미자의 역사 내지는 전통가요 전반의 역사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알고 계시거나 많은 자료를 가지고 계신 어르신 분들이 아직 어딘가에는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러한 오프라인 공간에 있는 소중한 역사 자료들을 온라인 공간, 즉 인터넷에 체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나 아카이브 같은 것을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출처 : 위키백과, 나무위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그 외 신문 기사, 텔레비전 방송, 인터넷 뉴스 기사 참고}

 

 

 

(네이버 블로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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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링크)

www.youtube.com/watch?v=L2jxLVMPOXE&t=51s

 

www.youtube.com/watch?v=ccoedRXBBUU&t=24s

 

www.youtube.com/watch?v=92Ufau5x1yY&t=1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