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가요 레전드

한국 대중가요 레전드 3위 – 현인

JOHN CENA 2021. 1. 5. 02:20

[[ 한국 대중가요 레전드 3현인 ]]

 

   한국 대중가요 레전드 시리즈, 그 세 번째 시간. 한국 대중가요 레전드 3, 현인. 지난 시간에는 194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광복 이전의 가요 황제 남인수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195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광복 이후 최고의 슈퍼스타인 현인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보려 합니다.

 

   원로 가수들의 일대기와 행적에 대한 자료를 찾는 것은 항상 그렇듯이 어려운 작업인데요. 그래도 현인 선생은 광복 이후에 활동하며 전성기를 누렸던 분이다 보니까, 광복 이전의 원로 가수인 남인수 선생이나 백년설 선생에 비해서는 자료가 아주 조금이나마 더 상세하게 나와 있는 편입니다.

 

   위키백과에서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자료가 구축되어 있기는 한데요. 하지만 여전히 수박 겉핥기식으로 히트곡의 목록을 단순 나열하는 수준에서 크게 더 나아갈 수가 없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번에도 역시 전통가요 가수들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분들이 기고한 칼럼이나 회고록 같은 것들에 상당 부분을 의존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전통가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인 평론가 박성서 씨가 2012년에 뉴스메이커에 기고한 <한국이 낳은 불멸의 가인, 가수 현인>이라는 칼럼에서 많은 부분을 참고하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통가요의 역사를 증언하는 산 증인과도 같은 분인 이동순 교수님이 2020년에 기고한 <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에서도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래에 대해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많은 부분을 참고하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현인의 가수 데뷔 이전의 행적에 대한 기록에서는 위키백과에 나온 기록과 평론가 박성서 씨의 칼럼에서 언급된 기록이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일치하는 대목을 살펴본다면, 고등학교 시절 배구부 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는 부분과, 일본에서 대학에 진학하면서 성악을 전공했다는 부분입니다.

 

   1942년에는 성보악극단에서 잠시 음악 교사로 일한 경력이 있고, 1943년에는 <신태양>이라는 악극단을 결성해서 중국 톈진에서 공연 활동을 펼쳤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대중가요 가수가 아니었으며, 성악을 전공한 자신의 장기를 살려서 주로 팝송이나 샹송을 불렀습니다. 광복 이후에는 서울에서 악극단을 조직해서 활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1919년생인 현인은 한국 나이로는 29세였고 만으로는 28세였던 1947년에 그 유명한 <신라의 달밤>을 발표하며 대중가요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현인은 흔히 대한민국 1호 가수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 표현은 문자 그대로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의 최초의 가수라는 뜻입니다.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최초의 대중가요 역사를 언급할 때 일반적으로는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사이의 인물인 윤심덕, 이애리수, 채규엽 등의 이름이 거론되곤 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이전이었고 일제 식민통치의 설움을 겪던 시절이었죠.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 최초로 대중가요 가수로 등록된 인물이 현인이었고, 이로 인해서 현인에게는 문자 그대로 대한민국 1호 가수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설명할 때 대한민국 임시정부시절부터 뿌리를 찾고 있기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시점은 1948년인 것처럼,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를 설명할 때도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뿌리를 찾고 있기는 하지만 광복 이후부터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가수협회가 생기는 등의 본격적인 체계가 정립되기 시작했습니다.

 

   현인이 대중가요 가수로 데뷔하게 된 계기는 작곡가 박시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박시춘은 광복 이전 초창기 한국 대중가요 역사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작곡가이며 가요 황제 남인수와 작곡가 박시춘, 작사가 반야월은 희대의 명콤비로 역사에 회자되고 있기도 합니다. 광복 이전에는 가수 남인수 작곡가 박시춘 오케레코드의 라인업과 가수 백년설 작곡가 이재호 태평레코드의 라인업이 희대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었습니다.

 

   광복 이전에 남인수와 명콤비를 이뤘던 박시춘 작곡가는 광복 이후에는 현인과 손을 잡으며 다시한번 세기의 콤비를 탄생시켰습니다. 이로써 작곡가 박시춘은 1940년대와 1950년대에 걸쳐서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인 남인수, 현인과 명콤비를 이루고 수많은 불후의 명곡들을 탄생시키면서, 그야말로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최고의 전설적인 작곡가로 등극했습니다.

 

   성악을 전공했던 현인은 처음에는 대중가요 가수가 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었지만, 작곡가 박시춘의 거듭된 권유로 인해서 결국은 대중가요 가수로 데뷔하게 됐다고 합니다. 1947년에 발표된 현인의 <신라의 달밤>은 광복 이후 최고의 히트곡으로 등극했습니다. 1947년 당시 명동의 한 극장에서는 영화 <자유부인> 상영 당시에 현인이 무대에 올라서 <신라의 달밤>을 열창하며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한국 대중가요 역사의 불후의 명곡 중에서도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대표적인 한국인의 노래에 해당되는 노래에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 이애리수의 <황성옛터>,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김정구의 <눈물젖은 두만강>,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현인의 <신라의 달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대표적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가수 현인의 등장 이전에는 남인수, 백년설, 고복수, 김정구 등이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로 군림하고 있었는데, 현인은 기존의 스타 가수들과는 색다른 스타일의 창법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신라의 달밤>의 빅히트와 함께 럭키레코드라는 음반 기획사가 출범하게 되었고, ‘가수 현인 작곡가 박시춘 작사가 유호의 라인업이 형성되며 희대의 명콤비가 탄생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떠오른 현인은 <비 나리는 고모령>, <고향 만리>, <럭키 서울>, <베사메무쵸>, <꿈속의 사랑>, <전우야 잘 자라>, <장미 빛 인생>, <나포리 맘보>, <굳세어라 금순아>, <꿈이여 다시한번>, <불국사의 밤>, <서울야곡>, <인도의 향불>, <체리핑크 맘보>, <아리랑 맘보>, <런던야곡>, <카네이션>, <그루미 선데이>, <세월이 가면>, <서울의 샹송> 등의 히트곡들을 발표하며 광복 이후 1950년대를 대표하는 인기 가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49년에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음악 영화인 <푸른 언덕>이 제작되었는데, 현인은 이 영화에 직접 출연해서 주연을 맡았고, 주제곡을 불렀습니다. 현인은 기존의 대중가요 가수들의 창법과는 색다른 세련된 팝스타일의 노래에 성악을 전공한 자신의 장기를 살려서 세련된 창법을 선보이며 인기를 끌었고, 한국에서 샹송 붐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에 현인은 전장을 누비며 군부대 위문 공연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전쟁 중에 발표된 현인의 <전우야 잘 자라>, <굳세어라 금순아> 등의 노래들은 국군 장병들의 사기를 한껏 북돋아 주었습니다. 특히 현인은 155마일에 달하는 전선을 27차례나 오가며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위문공연 활동을 펼쳤습니다. 전장을 누비며 국군 장병들을 위로했던 당대의 인기 가수 현인은 군번 없는 용사라는 별명을 얻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았습니다.

 

   현인은 전장을 누비며 위문공연 활동을 펼치던 중 차가 구르는 교통사고를 당하며 허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현인은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에 종종 피아노에 기대거나 의자에 앉아서 노래를 불러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뜻하지 않게 건방지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6.25 전쟁 중이었던 1951년에 현인은 그 유명한 <굳세어라 금순아>를 발표했습니다. <굳세어라 금순아>1.4후퇴를 전후한 시기의 흥남 철수를 배경으로 피난민들의 애환을 다룬 노래입니다. <굳세어라 금순아><신라의 달밤>과 함께 현인의 대표곡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전통가요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증언하는 분 중의 한 분인 이동순 교수님이 20208월에 부산 국제신문에 기고한 칼럼인 <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7분단과 이산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에서는 노래의 탄생 배경에 대해 상세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당시 오리엔트레코드 소속이었던 이병주 대표, 박시춘 작곡가, 강사랑 작사가는 박시춘의 부인이 운영하던 오리엔트 다방에서 다음 음반 제작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옮겨서 단골 냉면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월남 실향민들이 노점상을 하고 있던 양키시장 좌판대 앞을 지나던 중 강사랑 작사가는 노래의 착상을 얻었다고 합니다.

 

   강사랑 작사가는 식당으로 이동하는 길에 1절을 구상했고,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가사를 정리해서 박시춘 작곡가에게 메모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박시춘 작곡가는 원고를 보자마자 기타를 연주하면서 악보를 다듬었고, 이렇게 작곡한 노래를 가수 현인에게 주며 연습을 시켰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박시춘 작곡, 강사랑 작사의 <굳세어라 금순아>가 탄생하게 되었고, 당대의 인기가수 현인의 목소리로 발표된 <굳세어라 금순아>는 대중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6.25 전쟁 당시에 피난민들의 아픔을 달래주던 대표적인 노래로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과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가 전쟁에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커다란 사랑을 받았습니다.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금순이는 강사랑 작사가와 교제했던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 음반이 제작된 장소는 대구였지만 노래의 배경은 부산이었습니다. 노래 가사의 내용은 흥남부두에서 가족과 헤어진 뒤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온 한 청년이 누이동생 금순이를 떠올리며 고향으로 되돌아가서 가족들과 다시 상봉할 것이라는 굳센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 부산 시내의 영도다리 우편에는 현인 선생의 좌상과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이 노래비가 세워져 있는 부산 영도다리는 관광 명소가 되었고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노래비 앞에서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르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한편 1959년에는 당대의 인기 가수이자 가요계의 양대 전설이었던 남인수와 현인의 전설적인 노래 대결이 있었다고 합니다. 앞선 회차인 남인수 편에서도 잠시 언급했던 내용이기도 한데요.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내용을 정두수 작사가님이 회고록을 통해 정리해서 생생하게 그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정두수 작사가님의 회고록 원본은 2012410일에 문화일보에 기고된 칼럼인 <작사가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감성의 () 남인수 가요계의 紳士(신사) 현인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제목으로 검색하면 상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현인은 가수 활동뿐만 아니라 연기자로서도 활약한 만능 엔터테이너이기도 했습니다. 영화 <푸른 언덕>, <성벽을 뚫고>에 직접 출연해서 연기를 했고, 1952년에는 신청년극단의 가극 <성웅 이순신>에 출연했으며, 1965년에는 악극 <춘향전>에서 이도령 역을 맡아서 연기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1958년에는 대한가수협회의 전신인 가수협회가 설립되었는데, 현인 선생은 가수협회의 2, 3대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주요 수상 내역으로는 1967년에 문화공보부 공로상을 수상했고 1990년에는 제3회 원로연예인 공로대상을 수상했으며 1996년 제30회 가수의 날 특별공로상, 1999년 제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을 수상했고 화관문화훈장을 서훈 받았습니다.

 

   19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현인은 1980년대에 다시 귀국해서 국내에서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때부터 현인은 국내 가요계를 대표하는 원로 가수로서 <가요무대>에 여러 차례 출연하며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전통가요를 사랑하는 어르신들의 애환을 달래주었습니다.

 

   유튜브에는 현인 선생의 생전 활동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는데, 특히 1985년에 KBS에서 방영된 <현인 나이트쇼>1995년에 방영된 빅쇼: 현인 노래하는 나그네>의 공연 실황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현인 선생은 1999년에 지병인 당뇨가 악화되면서 활동을 중단했고, 2002413일에 별세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중가요 역사에서 원로 가수들 중 최고의 전설로서는 남인수, 현인, 백년설 이렇게 3인방이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광복 이전의 가요계 황제로는 남인수, 광복 이후의 가요계 제왕으로는 현인의 이름이 대표적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또한 1940년대에는 남인수와 백년설이 라이벌 구도를 이루며 양대산맥 체제를 형성했고 1950년대에는 남인수와 현인이 라이벌 구도를 이루며 양대산맥 체제를 형성했습니다.

 

   원로 가수 레전드 3인방 중에서 남인수와 백년설은 광복 이전에 전성기를 누렸던 인물이고, 돌아가신 지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데다가 <가요무대>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젊은 세대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반면에 현인은 광복 이후에 전성기를 누렸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서 가요무대에도 여러 차례 출연하며 대표적인 원로 가수로 존재감을 알려왔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에게도 그 존재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습니다.

 

   2010년대에 접어들어서 KBS<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그램이 출범하면서 과거 전설들이 다시 조명받을 기회가 생겨났고, 현인 선생을 전설로 다루는 특집 방영분도 한 차례 편성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현인 선생의 업적이 가요계 역사에 기록되고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반 대중들에게는 아무래도 그 이름이나 존재감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2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국내에서 트로트 열풍이 일어나면서 젊은 세대에서도 트로트 음악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통가요에 대한 인식도 확산되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1950년대의 인물인 현인 선생은 아직까지는 일반 대중에게는 여전히 생소하게 느껴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분위기에 변화를 일으킨 젊은 신예 트로트 가수가 등장하며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신예 트로트 가수 조명섭은 가수로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인 중학생 시절에 KBS2TV의 예능 프로그램인 <안녕하세요>에 출연해서 현인 선생의 <신라의 달밤>을 멋지게 부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SBS의 스타킹을 비롯한 몇몇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알려 왔습니다. 그러다가 2019년에 마침내 KBS<트로트가 좋아>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트로트 가수로 정식으로 데뷔했습니다.

 

   조명섭은 노래 스타일과 말투 등 전반적으로 풍겨나오는 이미지가 옛날 멋쟁이’, ‘옛날 신사’, ‘모던보이를 연상시키며 현인의 환생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조명섭은 현인의 <신라의 달밤>, <나포리 맘보>, <굳세어라 금순아>, <베사메무쵸> 등의 불후의 명곡들을 멋지게 소화해내며 1950년대의 인물이었던 현인의 존재감을 2020년대에 되살려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멋지게 소화해내면서 1940년대의 인물이었던 남인수의 존재감까지도 되살려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계기로 해서 이제는 트로트 열풍이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전통가요의 전설들의 유산을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이 계승하고 그 역사를 전승해 나가기 위한 체계적인 움직임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불후의 명곡>에 전설로 출연했던 가수 주현미는 조명섭의 무대를 보면서 현인 선생의 생전 추억을 떠올리고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전통가요의 전설 현인 선생은 생전에도 가요무대에서 어르신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20세기에 한시대의 역사를 풍미했고, 이제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 와서는 현인의 환생이라 불리는 신예 트로트 가수 조명섭을 통해서 그 존재감이 되살아나면서 대한민국의 전통가요의 유산을 후대에 전해주고 있습니다.

 

 

{출처 : 위키백과, 나무위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그 외 신문 기사, 텔레비전 방송, 인터넷 뉴스 기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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